-
[정혜련 사회복지사] 내가 생각하는 것을 오해 없이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대화는 그 자체가 생물(生物)이 되어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격려가 된다. 일상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 기쁨 역시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최근에 나도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 서양화가 박서보(1931~)는 나이 스물여섯에 반국전(反國展)을 외치며, 안정된 주류의 길을 버렸다. 다양성이 결여되고 국전(國展)이 한 사람의 작품처럼 획일화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에 대해 분명하
백목련
충청일보
2019.02.19 14:09
-
[이향숙 수필가] 하늘은 잿빛 구름이 가득하다. 붉은 기운이 잿빛 뒤로 살고마니 올라온다. 수평선을 깔고 앉아 꼼짝하지 않는 구름은 어르고 달래도 비켜 설줄 모른다. 진즉에 육십갑자를 넘어 선 동창생들과 수다삼매경에 빠진 뒷자리의 아주머니들은 헛걸음을 하였다며 왁자지껄이다. 사춘기 딸들을 앞세우고 늦둥이 아들을 업고 올라 온 옆자리 부부는 먹을거리를 풀어 놓고 아이들의 입에 억지로 밀어 넣어 준다. 동쪽을 향해 해돋이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에도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배낭을 멘 청년이 데구르르 굴러 내린다. 일
백목련
충청일보
2019.02.07 16:12
-
[정혜련 사회복지사] 시바타 도요는 일본의 시인으로 1911년 일본의 도치기시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그녀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집안형편이 어려워져 음식점에서 더부살이를 했고 33세에 주방장인 시바타 에이키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1992년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생활하며 아들을 키웠다. 일본무용을 하며 노후를 보내던 그녀가 허리가 아파 좋아하던 취미를 그만두게 되어 낙담하고 있을 때 아들은 그녀에게 글쓰기를 권했다. 시바타 도요는 92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그녀의 나이가 99세가 되는 2009년
백목련
충청일보
2019.01.29 14:31
-
[육정숙 수필가] 청국장을 맛있게 끓여 친구들 몇몇이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나이가 드니 모두들 집에서 먹는 청국장이나 된장국, 김칫국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한 친구는 손자가 너무 약해서 그런지 잔병치레가 많고 산만하고 성격이 점점 날이 서는 것만 같아 상담도 받고 치료중이긴 한데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문제일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잠정적인 결론이 되었다. 손자가 좋아하는 건 달달하거나 햄, 치즈 등 가공식품이라고 한다.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좋아한단다. 요즘은 먹을 것도 마음 놓고
백목련
충청일보
2019.01.25 14:12
-
[이향숙 수필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한껏 고양되었다. 장내는 조용해지는 듯싶다가 다시금 웅성거린다. 애국가를 부르는 졸업생들 뒤에서 화음을 넣듯 따라 부른다.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 할 적마다 파도치듯 감정이 너울댄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자라는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행복한 일임에도 목이 메인다.졸업장 수여식이 이어진다. 한 송이 장미를 든 교장선생님이 담임선생님과 교단에 서고 학생들이 순서대로 올라 선생님과 친구, 후배, 학부모를 향해 감사 인사를 한다. 스크린에는 당사자의 앨범사진이 올려져 멀리서도 얼굴을 볼 수
백목련
충청일보
2019.01.18 15:20
-
[정혜련 사회복지사] 현재 노인의 기준 만 65세는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는 기대수명이 66세였다. 현재 기대수명이 80세가 훌쩍 넘은 시점에서 1950년대 후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진입하는 순간 복지비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이 부분에 대해선 첨예한 대립과 논란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거시적 정책측면이 아닌, 각 개인의 삶의 문제로 바라보는 미시적인 측면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신체나이가 건강하고 사회에 공헌할 여지가 많은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수당을 받으며 자신의 삶
백목련
충청일보
2019.01.15 14:27
-
[육정숙 수필가] 미호천 물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강줄기로 힘차게 물길을 차고 오르는, 청둥오리들의 날갯짓을 본다. 동토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손에 잡히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아도 머잖아 봄이 올 거라는 걸 느끼듯이. 차디찬 겨울바람 속에서 물줄기를 하얗게 부셔내며 날아오르는 청둥오리들의 꿈이 서리서리 안겨온다. 미호천 강바람은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더 차다.한 폭의 동양화 이듯 자연스레, 겨울이 미련처럼 바람 속에 매달려 아우성을 쳐댄다. 갈대는 숙명처럼 머리를 하얗게 풀어헤치고, 바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겨 버렸다. 그런 갈대를
백목련
충청일보
2019.01.11 16:54
-
[이향숙 수필가] 바람이 거칠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도 한기가 목을 파고든다. 거리로 나섰지만 좀처럼 구미를 당기는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때를 때울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긴 한데 하고 머리를 돌리는 순간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정겨운 할머니 손칼국수 이다.육수는 오래된 깊은 맛을 낸다. 어사리 과부댁이 함지박에 이고 온 바지락과 멸치로 육수를 내고 텃밭에서 애호박이랑 고추를 따다 송송 썰어 고명을 얹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어머니가 내어 주던 추억의 맛이랑 닮았다. 그래선지 어머니가 그리울
백목련
충청일보
2019.01.04 15:28
-
[정혜련 사회복지사] 나이가 들어갈수록 트로트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트로트 장르는 1928년 문수일 작사, 김서정 작곡의 '세 동무'에 이르러 창작곡으로 시작하였고, 1932년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일명 '황성 옛 터')을 거쳐, 1934년 고복수가 부른 '타향'(일명 '타향살이')과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이 정착되었다.트로트 가사는 그 정서가 신파적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감정
백목련
충청일보
2018.12.31 14:14
-
[육정숙 수필가] 낯선 도시에서 서성이듯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 앞에서 서성인다. 해마다 이맘때면 그랬다. 일상은 늘 그래 왔는데 마지막 남은 날들이 더 크게 들어온다. 낯선 도시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방인 같은 하루를 또 다시 맞이하려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구석이 어수선하다. 어느새 사라진 시간들! 분명히 나를 스쳐 지나간 시간들이거늘 지나간 시간들조차 낯설다. 분명 나를 거치지 않고는 지나 갈 수 없는 시간들이었음을 안다. 하지만 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빠져 나가는 사이 나는 언제나
백목련
충청일보
2018.12.28 13:34
-
[이향숙 수필가] 하얗게 눈이 내렸다. 바지런한 사람이 오솔길에 발자국을 내었다. 동화속의 소녀마냥 발자국을 따라 걸어 본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곱게도 누워있는 천사들을 흔들어 깨운다. 파르르 눈 꽃잎들이 내려앉는다. 낮은 곳에서 더욱 반짝인다.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모든 것을 쏟아내 차라리 청명하다. 혼자 걷기에 아까운 오늘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옛 동료의 얼굴이 떠오른다. 계면쩍게 웃기만 하는 그가 처음에는 불편 했었다. 근거 없는 긍정적인 태도도 부담스러워 더러 자리를 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본인의 맡은 업무에
백목련
충청일보
2018.12.21 16:07
-
[정혜련 사회복지사]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라는 ‘스즈키컵’에서 베트남이 말레이시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드라마 같은 그 순간을 베트남 사령탑을 맡고 있는 박항서 감독 덕분에 국내 공중파를 통해 시청할 수 있었다. 경기도 훌륭했지만, 경기가 끝난 후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박항서 감독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현장에 갑자기 난입한 선수들이 물을 뿌리고 책상을 치며 환호했고, 그 장면을 모든 국민들이 보게 되었다. 물세례를 받은 박항서 감독은 안경에 묻은 물을 차분히 닦아내고 선수의 볼을 자애롭게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 선수들의
백목련
충청일보
2018.12.18 16:46
-
[육정숙 수필가]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결혼식 인도 갑부 딸 결혼 비용만 1200억!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의 딸' '이샤 암바니'와 또 다른 억만장자의 아들 '아자이 피라말'의 아들이라네요. 세계 쟁쟁한 대기업 최고 경영자들은 물론 우리에게 낯익은 하객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전 세계 팝스타 비욘세도 참석해 축하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암바니 가족은 축하연을 찾은 하객들을 수송하기 위해 전세기를 100여 차례 띄웠다고 하네요.그날 뭄바이 국
백목련
충청일보
2018.12.14 14:44
-
[이향숙 수필가] 지난 가을 문학인 대회에 참여 했을 때이다. 공연이 한창인데 객석 중앙에서 노인이 일어선다. 연신 머리를 숙이며 사람들에게 속삭인다.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서야 그 말이 들린다. "고맙습니다."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거나 실례한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내가 지나는 길에 당신이 비켜주어 고맙다는 말이다. 그가 내게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비켜주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어쩐지 고마운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함이 느껴졌다.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있을까. 의미 없는 인사치레로 느껴질 때가 간혹
백목련
충청일보
2018.12.07 12:47
-
[정혜련 사회복지사] 사촌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언니는 항상 재즈를 듣곤 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음에도 언니는 집이나 차안에서나 항상 재즈를 듣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도 재즈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난 재즈가 너무 좋아.” 라는 언니에게 “뭐가 그렇게 좋아?” 라고 하자 “너무 멋있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계속 강제로 듣다보니 처음에는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좋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들어도 혼자 있을 때는 절대 듣지 않았다. 혼자 재즈를 듣고 있으면 재즈가 전해주는 외로움이
백목련
충청일보
2018.12.04 14:29
-
[육정숙 수필가] 숨을 곳이 없다. 우리는 점점 대가리만 감추는 꿩이 되어가고 있는가! 마스크만 한다고 초미세먼지를 피해 갈 수 있으려는지. 이제는 습관처럼 기상예보를 살핀다. 살핀들 무슨 수가 있는가! 노약자나 어린아이, 면역력이 약한 이는 가급적이면 외출을 자제 하라는 것이 고작이다. 어느 계절을 막론하고 미세먼지의 침입이 없는 계절이 없다. 나날이 극심해지는 미세먼지의 횡포를 하루 이틀 외출을 자제 한다고, 마스크만 착용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인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온다.미세먼지는 직경 10㎛이하의 작은 먼지로 자동차의 배
백목련
충청일보
2018.11.29 15:44
-
[이향숙 수필가] 무대에 선 그를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닌데 복잡한 감정들이 회오리를 친다. 드디어 막이 열린다. 어둠속에서 한줄기 조명만이 그를 비춘다. 익숙했던 얼굴이 낯설다. 첫 곡은 '상령산'이다.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조곡이다. 산을 오르기 전 몸을 풀고 마음속에 담긴 상념을 지우며 상서로운 것들을 무한으로 받아 드릴 준비를 하는 곡이란다. 이것은 마치 처음 우린 차(茶)물을 버리지 않고 마시는 것처럼 진하지 않으며 옅은 향기가 입안에 머문다.두 번째 곡은 '창성자진한잎'이다. 고종 때 대왕대비
백목련
충청일보
2018.11.23 16:49
-
[정혜련 사회복지사] 존경하는 선배와 무심천을 산책했다. 세상사는 얘기에 알아채지 못했던 찬바람이 저녁 8시를 넘어가자 옷깃 사이로 숨어들어왔다. “저녁 먹었니?” 선배가 주머니에 제법 두툼한 옷차림에도 팔짱을 꼭 끼며 말했다. “뭐 좀 먹을까요?” 이심전심에 나는 얼른 받았다. 그리고 느닷없는 그의 메뉴 제안은 ‘새뱅이찌개’였다. 무슨 음식인지 감을 못 잡는 나에게 선배는 ‘민물새우찌개’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처음 듣는 음식이름에 호기심이 발동 했고, 쌀쌀한 날씨에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었던 나는 직감을 믿으며 흔쾌히 동의했다
백목련
충청일보
2018.11.20 15:33
-
[육정숙 수필가] 온몸으로 물이 든다. 낙엽이 하나 둘 지는 가을저녁, 노을빛에 서 있으면 온 몸이 홍시처럼 발갛게 물이 든다. 언 땅을 다독이며 씨앗을 품고 꺼이꺼이 달려 온 시간들! 하루라는 징한 사연들을 풀어내며 어르고 달래 온 시간들을 품고, 이제 막 서산을 넘어가려는 해가 미련을 두는가! 노을빛이 어찌 저리도 서럽도록 붉은지! ‘평생을 흙을 파고 산 탓이제’ 두 손을 썩썩 비벼대는 소리가 너무 버석거려 부끄러웠나보다. 혼잣말인 듯, ‘나무껍질인지 여자 손인지 나도 모르것소’ 라며 그는 여전히 이 가을볕에 서 있다.‘요새는
백목련
충청일보
2018.11.16 14:15
-
[이향숙 수필가] 동기들에게 불려나간 아들이 조그만 케익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군 입대 축하 선물이란다. 저희들끼리 차를 마시면서 한쪽을 허물어 먹었다. 모양을 정리하다 보니 더운 것이 그 위로 떨어진다. 버리기가 아까워 떼어 내 입안에 넣었다. 눈물 젖은 케익이다.고개를 들면 산과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두메산골에서 자라선지 케익의 존재는 티브와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스무 살 넘어 제과점에서 직접 본 케익은 현실에서 동화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옅은 갈색 크림으로 덮인 스펀지의 부드러움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달콤함은 두
백목련
충청일보
2018.11.09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