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하고 있는 예의는 감각적인 예의와 형식적인 예의로 구분할 수 있다. 감각적인 예의는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행하여지는 뿌리가 있는 예(禮)를 말하는 것이며, 형식적인 예(禮)는 마지못해 하는 예의로 과시적이거나 굴욕적인 예(禮)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법(法)에 의해서 집행되는 구속력이나 강제성을 떠나 자율적으로 본의에서 우러나오는 참다운 도덕적인 양식에서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禮)는 특수한 교육과정에서 절차와 순서에 의해 공식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이 성장하
처음 뵙게 되는 윗사람에게 부끄럽다고 창피하다고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우물쭈물 넘어가는 예의는 허약한 예의로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마지못해 하는 건성적인 예의로 생각하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예절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다. 우리는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알만한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보편화 된 예(禮)의 표현으로 이처럼 입으로 쉽게 하는 인사가 있고 입과 함께 목, 고개를 숙이는 목례가 있고 허리까지 굽히면서 정중히 하는 정중례가 있다. 이것은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는
옛날 논어(論語)에는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 것이며 예(禮)가 아닌 소리는 듣지도 말 것이고 예(禮)가 아닌 일은 하지도 말고 예(禮)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에는 나서지를 말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고 있고 이러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인간의 지혜의 손으로 만들어진 법(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겠지만 이러한 법(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예법(禮法)에 의존하였고 만약 예법(禮法)을 모든 사람들이 잘 지키고 보존하였다면 불편하고 구속적인 오늘날의 법(法)은 탄생되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인사는 통상적으로 가벼운 목례지만 옛날에는 정중례가 상례로 되어 있었고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윗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낯선 이웃마을 어른이 마을을 방문하여도 그냥 쳐다보고 지나치는 날이면 어른들에게 심한 꾸중을 듣기 마련이었다. 윗사람에게는 싫든 좋든 정중히 예의를 지켜야만 부모를 욕 먹이지 않는 것으로 인사를 게을리 하고 어른대접을 소홀히 하는 날이면 어느 집 누구네 몇 째 놈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등으로 죄 없는 부모님이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성장 과정이 공통된 예의범절의 산
사교에는 동양적인 사교방법과 서구적 사교방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동양적인 사교는 대화로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으로 이것이 진전되면 술판이 벌어지거나 음식 파티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양식 사교방법은 먼저는 대화로 시작되겠지만 어느 정도 서로의 관계가 좁혀지면 우리가 말하는 사교춤(댄스)으로 상대방과 몸으로 하는 사교가 진행된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댄스를 사교장의 꽃이라고 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긴다. 이렇게 사교방법이 다른 것은 전통 예절이 서로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각자의 생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배우다 간다고 하였다. 이것은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뜻으로 배워서 깨우쳐야하고 아는 것은 무거워야 하므로 배운 사람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상대편보다 윗사람이나 직장 상사가 된다고 해서 아랫사람에게는 먼저 인사를 받아야만하고 아랫사람이 먼저 고개를 숙여야만 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인사는 먼저 보는 쪽에서 하는 것이 좋고 같은 위치에서 행해진다면 당연히 아랫사람이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한다. 공자 말씀에도 세 사람이 모이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즉, 삼인행필유아사(
돈은 인간이 생활하는데 하나의 필요한 도구로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요지경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고 부와 명예가 돈의 색깔과 부피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요지경 세상이지만 돈으로 이루어진 명예는 바탕이 없고 인간의 근본이 없으면 지(知)와 예(禮)와 덕(德)이 부족하여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되고 투자의 대가를 바라는 비행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처럼 돈은 인간에 의해 인간의 편리한 생활수단의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 엄청난 월권행위를 자행하면서 사회악을 조장하고
이 땅에 참된 예의범절이 뿌리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가 깨끗해야 하고 경제가 원만히 이루어져야 만이 훈훈한 민심이 조성되고 믿음과 사람이 싹트는 과정에서 참된 예의가 뿌리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듯이 정치가 타락하고 경제가 빈약하면 민심이 흉폭하게 되고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 참된 예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진다. 불신사회가 조장되면서 겁 없는 어떤 젊은이가 천륜을 져 버리고 도덕을 불사르는 입에 담지 못할 엄청난 사건을 우리는 신문 방송을 통해 보고 들었을 것
누구에게나 젊음은 평생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생에서 잠깐 머물다 가는 것으로 언젠가는 늙게 되고 힘겨운 육신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고 부모 자식 간에 잦은 의견 충돌에서 생겨진 갈등으로 마침내는 늙고 병든 부모를 마다하고 길거리에 내다 버리는 천륜을 거역하는 몹쓸 인간들이 있다. 아무리 험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는 무례함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저주 받아야 될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이렇게 자식에게서 버려진 늙고 병든 노인들이 국가나 사회단체에서 어렵게
요즘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너무나 예민하여 분, 초를 다투는 시간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 그것은 바로 세상이 그만큼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시간을 방해하는 갖가지 장애물 때문에 본의 아니게 시간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로는 출근시간에 교통체증으로 빚어지는 지각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중요한 약속 시간에 막혀버린 도로 한가운데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를 한번쯤은 겪어 보았을 것이다. 약속도 하나의 예절이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를 말아야 하고 한번 맺어진 약속은 이유가 있어서도 안
오늘날 우리의 경제는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으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모두의 건강한 정신에서 내일을 똑바로 내다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우수한 고급상품들이 개발되어 세계시장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 상품이 품귀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최고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오늘의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며 이것은 우리 모두가 고스톱 판에 쓰리고 때리는 냥으로 신경 쓰고 몰두하면 굳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우리에게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다. 노동력도 무궁한 하나의 자원이다. 오늘날 우리 경제에 미치는 고급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3대 조건으로 의(衣), 식(食), 주(住)가 있다. 육신을 보호하고 치장할 수 있는 의류가 있어야 하고,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고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 비축을 위한 여러 종류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며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쉼터인 집이 있어야 한다. 식(食)과 주(住)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가 나름대로의 자기들의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겠지만 의(衣)는 유독 인간들에게만 허용된 특허치장물이다. 이것은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의(衣)는 생리적 현상이나 계
항상 자식을 사랑하고 훌륭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가르쳐준 우리의 훌륭한 스승이 바로 곁에 있는 부모님이었고 이러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온 우리들은 세상살이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정교육을 통해 어렵고 힘든 일을 몸소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자행하고 있는 자식 농사는 잘 되어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들의 가정에서 순리(順理)와 진리(眞理)의 법칙을 자식들과 함께 토론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인성교육(人性敎育)은 얼마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돈 몇 푼 집어줘 좋은 대학 보내자고 학
우리는 안방에서 TV등을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한번쯤은 지켜본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선진국은 잘 사는 나라이고 후진국은 형편이 어려운 못사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잘 살고 못사는 차이가 그토록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서도 어떤 사람들은 복(福)에 겨울정도의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강냉이 죽 한 그릇도 먹지 못해 뼈와 가죽이 맞붙은체로 인간으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한체 기약 없는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모두의 생명체들은 그 자체를 보존하기 위하여 먹고 살아가는 방법은 틀리겠지만 먹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공통된 삶에 원칙이 있다.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살기위해 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를 두고 사랑방 잡담처럼 답이 없는 논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어느 한쪽에도 아무런 비중을 둘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먹어야 하고 먹어야 만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생명체가 유지되므로 모든 활동이 진행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이 삶의 굴레를 형성하게 되
일부 매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여자용 외제 브래지어 하나가 몇 십 만원을 호가하고 건강팬티, 정력 팬티니 하면서 이런 것을 착용하면 여자의 가슴이 아름다워지고 외국의 유명배우가 평소에 즐겨 입었던 것이라는 장사꾼의 입에 발린 소리에 홀가닥 빠져들어 구매충동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은 소비자가 이 나라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외제 건강팬티를 입는다고 아픈 곳이 없어지고 건강해진다면 세상에 병원은 무슨 필요가 있으며 제약회사는 당장 문을 닫아야 될 것이며 정력 팬티를 입는다고 어떻게 정력이 좋아지는지 알 수 없지만 칠순
삼배 모시 적삼에 까칠까칠한 삼배 고쟁이가 가난했던 지난날의 동반자(同伴者)였고 자연과 더불어 인정이 넘치는 낭만의 세월이었다. 들녘에서 진종일 일하고 밤이면 호롱불 아래서 질삼하시던 어머니의 정성어린 손길이 살아있는 우리의 신토불이 그 자체였다. 우리 땅에서 우리의 손으로 가꾸고 만들어진 우리의 전통 의류가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우리 모두의 치장물(治粧物)이었고 낮이면 들판에서 땀 흘리면서 일하고 밤이면 졸음을 참아가면서 허벅지 위에서 실오라기를 잇고 물레를 돌리던 어머니의 정성이 얼마나 소중한 사랑이며 가정과 자식을 위한 희생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인종(人種)이 살고 있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국가라는 집단이 형성되어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고 질서와 계통을 지키기 위한 법(法)이 만들어지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법(法)이 준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 협약(協約)된 단체 기관이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돈 있고 빽 있는 가진 자의 법(法)은 가볍고 돈 없고 빽 없는 가난한 자의 법은 한 없이 무거운 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법(法)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납세(納稅)의 의무도 돈 있고 빽 있으면 교묘히 피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이 땅이 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풍토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돈 앞에는 어느 누구도 약해지게 되는 것으로 모든 생활수단이 돈과 연계되어 한마디로 인간은 돈에 노예가 되었다. 사람들은 대단한 위력을 가진 돈을 얻기 위해 별의별 사회악이 조장되고 냉정해지면서 야박스러운 민심이 잠재하여 언제 무슨 일들이 폭발하게 될는지 모른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한 정신 상태를 가질 수 있어야 만이 앞날을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이 있는 것으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가
우리들이 가진게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이처럼 흥청망청 즐기면서 쓰고 보자는 식의 저속한 관광문화가 오늘과 같은 추한 모양세로 가게 된다면 이것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일종의 방종(放縱)이지 관광이라는 의미로는 볼 수 없고 자라는 후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유산으로 물릴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아름다운 관광지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게 되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신선한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낸다기 보다는 나를 위하는 여행, 내 기분으로 즐기는 여행으로 완전히 자신만이 존재하는 별천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