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경장 이후 거친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향교 아래 터를 잡은 충주 교현초등학교(교장 유공열). 이 학교가 이 땅의 인재들을 기르고자 첫 문을 연지 벌써 1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 세기동안 교현초교를 거쳐 간 졸업생 수만 2만 7000여명.수많은 졸업생 중에는 교육,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분야 등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낸 훌륭한 인물도 많았다. 강산이 11번 변하도록 충주를 지켜온 교현초교가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충주시민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교현초교는 충북도 100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 충북사의
▲1959년 졸업식 사진.◀ 옥천군 처음 세워진 초등학교옥천 청산초등학교는 1905년 4월1일 '청산사립신명학교'로 개교 했다. 옥천군에선 처음 세워진 청산초는 유난히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많은 학교다.청산초는 일제 강정기시대 우리말 을 쓰지 못하게 교육부의 동화교육 명령이 내려오자 평양 출신 한 선교사가 학생들에게 방과후 시간에 몰래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가 사형을 당했을 사건이 있을 정도로 애국심이 높은 학교라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를 증명하듯 독립운동가인 조동호(1892~1954)선생이 청산초 출신이다. 조 선생은 상하이 임시
▲ 제28회 인천 월미도 여행기념 사진.◀ 청주에 처음으로 세워진 공립학교청주 주성초는 개화된 학교 교육이 시작되던 무렵인 1907년 5월6일 청주공립보통학교로 문을 열었다. 청주에 처음으로 세워진 공립학교로 기록된다. 주성초 학생들은 일제가 근대적인 학교 제도 도입이라는 명분 아래 민족 사상 말살을 위한 동화 교육,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를 국어 과목으로 하는 등 식민 교육을 악랄하게 실시하는 바람에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교육을 받아야 했다. 매사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야 했고, 한국인 교사와 은밀한 교감으로 저항
미국 발 금융 위기 여파로 인해 imf체제 보다 더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 1960년대 경제 부흥기를 거쳐 1990년대 중반까지 탄탄대로를 달려오던 대한민국이 1996년 imf 금융 위기로 한 때 국가적인 경제난을 겪었으나 전 국민들이 슬기롭게 극복,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0년에 만에 다시 찾아온 현재의 경제 상황도 국민들이 민족의 저력을 발휘, 신속하게 극복해 나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조상들의 특별한 교육열이 주춧돌이 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피 지배국가로 전락해 온갖 수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