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속에 대표적인 사학자로 사마천을 꼽고 있다. 그는 고대 중국 시조부터 그가 살고 있었던 한무제(漢武帝)에 이르는 2천년간의 고대사를 총정리했다는 점도 있지만, 그의 역사의식과 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매우 곧았다. 사기를 쓰고 있을 무렵 그는 태사령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때 청년 장군 이 릉이 흉노를 공격했다가 포로가 되자 이 소식을 들은 한나라 황제 유철은 노발대발하면서 장수가 싸움에 졌으면 자결을 할 일이지 부끄럽게 어떻게 포로가 되었는가 하면서 역적으로 몰았다. 그러자 다른 모든 중신은 황제의 비위를 맞춰 맞장
정현웅칼럼
정현웅
2008.04.02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