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은 항상 허망하게 한다. 우상은 썩은 고기 덩어리 같아서 아무리 보자기로 싸서 덧칠을 해도 결국 썩은 냄새를 풍기고 만다. 한번 썩은 고기는 끓는 물에 아무리 삶아도 생고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미 썩어버린 인간일수록 사람들 앞에서는 싱싱한 고기처럼 냄새를 피우려고 덤빈다. 천하에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꾼처럼 떠벌리지만 뒤로는 온갖 잡질을 일삼으면서 오직 들통이 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턱 없이 사기를 친다. 그러나 이러한 사기 행각은 오래가지를 못한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고 긴 꼬리는
마음이 곧고 굽지 않아 명암(明暗)이 없다면 무엇을 감추거나 숨기지 않는다. 떳떳하고 당당한 마음은 걸림이 없다. 이러한 마음을 강(剛)이라고 한다. 이러한 강(剛)은 강(强)한 것이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이 강하다는 말이다. 강(强)은 힘을 믿지만 강(剛)은 사랑함을 믿는다. 강(剛)은 안긴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 같은 것이다. 걸림이 없는 마음은 행동하는데 망설임이란 없다. 해야 할 일이면 반드시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하거나 못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
선비는 벼슬에 오르거나 학문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나를 다스릴 줄 알고 남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선비가 된다. 그러므로 학문이나 무슨 관직으로써 선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잘 헤아리면서 행동함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선비의 길을 걸을 수가 잇다. 선비는 어떤 사람인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산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줄 아는 목숨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만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은 다른 짐승과는 다르다고 본 것이다. 사람에게는
욕심이 많고 약은 한 농부가 두매에 살았다. 두 섬지기 논을 머슴 없이는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머슴에게 주어야 할 새경이 아까워 꾀를 내서 자기 딸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한 소년과 삼년동안 새경 없이 머슴살이를 하면 딸을 주겠다고 약조를 했다. 그 소년은 열일곱살이었고 농부의 딸은 열다섯 살이었다. 소년은 열심히 그리고 아무말없이 삼년동안 일을 했다. 자기가 마음을 둔 처녀가 지어주는 밥을 먹으면서 일하는 것이 더 없이 행복했다. 이미 처녀도 일을 잘하고 믿음직한 사내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욕심 많은 농부
도둑들은 잡히기만 하면 감옥으로 간다. 그래서 감옥은 이런 도둑, 저런 도둑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도둑도 사람이므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왜 들어왔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감옥 안에서는 도둑들의 집회가 열리게 마련이다. 도둑들의 집회에서는 큰 도둑이 윗자리에 앉고 좀도둑은 아랫자리에 앉는다. 상좌에 앉은 한 도둑이 좌중을 향해 다음과 같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잘난 도둑은 감옥 안에 있지만 못난 도둑은 감옥 밖에 있는 법이다. 뇌물을 받는 놈도 도둑이고 뇌물을 바치는 놈도 도둑이다. 급행료를 받고 일을 봐주는 관리도 도둑
선비가 가난하면 대접을 받던 때가 있었다. 관직에 있는 선비가 가난하면 더더욱 대접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백성들은 그러한 선비를 모실 줄을 알았다. 물론 조선의 관료계는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돈으로 자리를 사고 돈 받고 자리를 팔았던 탓으로 한 자리를 차고앉으면 본전의 몇 백배를 뽑아내려고 고을 원님들은 갖은 짓거리를 부렸다. 위쪽에 상납을 잘해야 자리를 부지할 수 있었으니 백성들을 후려서 뜯어낼 대로 뜯어내 착복하고 바치고 별짓을 다했다. 그래서 탐관오리란 말이 생겼다. 그것은 권력을 탐하는 무리와 더러운 관리란
사람이 사는 세상은 수많은 제도를 간직하게 마련이다. 갖가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잘 이끌어가려고 그러한 제도들이 생겨난다. 인간과 제도와의 관계에서 다스림(治)이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 문제는 다시 다스리는 쪽과 다스려지는 쪽으로 나누어 놓는다. 그리고 다스림은 이 두 쪽의 관계를 잘 맺느냐 못 맺느냐에 따라 다스림이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진 사람이 다스리면 잘되지만 어질지 못한 사람이 다스리게 되면 다스림이 잘못되는 것이다. 정치는 어진 사람(仁者)이 해야 한다. 왜 인자(仁者)가 정치를 해야 하는
물에 기름방울이 떨어지면 물기름으로 되는 법이 없다. 물은 물대로, 기름은 기름대로 갈라져있게 된다. 물방울은 물방울끼리 기름방울은 기름방울끼리 따로따로 엉킨다. 참새 떼가 있는 곳에 비둘기 떼가 오면 참새 떼는 날아가 다른 곳에 무리를 짓고 앉는다. 왜 비둘기 떼와 참새 떼는 한자리에 어울려 있지 않고 서로 갈라져 참새는 참새끼리 비둘기는 비둘기끼리 따로 떨어져 무리를 짓는 것인가? 같은 것끼리 한패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이처럼 패를 갈라 같은 것끼리만 한 무리를 이룬다. 물과 기름처럼 비둘기와 참새 떼
세상에 제 이름을 빛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온갖 술수를 부리게 마련이다. 뭇사람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까닭이다. 수말이 암말을 보면 갈기를 펴서 용을 쓰고, 수놈 공작이 암컷 공작을 만나면 빛나는 꼬리를 들어 뽐내는 것처럼 이름을 남기려고 벼르는 사람들은 온 세상을 화장대처럼 생각하고 별의별 화장을 하려고 한다. 대중의 시대일수록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군상들은 대중의 눈치에 따라 속없이 허둥대게 마련이다. 인기에 걸신이 들리면 정신 나간 허깨비처럼 듬직할 수가 없다.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고과표를 받아
정치가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이 세도로 변하면 원망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정치는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치를 정치(正治)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의 정(政)은 곧 정(正)이다. 정치는 바로잡는 것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고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는 것을 정치인이 알면 그는 정치를 정치(正治)로 다스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政治)꾼은 다스리는 것은 군림하는 것이고 군림하자면 호령을 해야 한다고 우긴다. 이런 무모한 고집 탓으로 잘못된 정치가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다. 폭군이나 독재자들은
AFKN의 TV 심야방송은 이른바 토크쇼(Talk Show)들이 줄을 잇는다. 그 중에서 자니카슨이 나오는 프로가 제일 인기가 있다고 한다. 카슨이 무대에 나오는 꼴이 가관이다. 손뼉을 치고 거드름을 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목에 잔뜩 힘을 주고는 마치 로마황제나 된 것처럼 양팔을 벌려 방청석을 향해 내 말을 들어 보라고 콧대를 높인다. 그러면 방청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카슨은 인기에 감사한다고 절을 한 다음 세상일들을 이리저리 뒤집기도 하고 꼬집기도 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청중은 배꼽을 잡고 웃고 좋아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칠공자가 누구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던 때가 있었다. 모모 재벌의 아들이네, 모모 부호의 아들이네, 아니면 모모 고관의 아들이네 하면서 그럴듯한 입질거리를 칠공자가 제공해 주었다. 딱 꼬집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돈이 많은 집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들은 돈 걱정이 없었으므로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짓들을 하면서 현대판 한량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판돈을 걸고 포커판을 벌려 돈으로 놀이를 하고 엄청난 화대를 미끼로 밤마다 미녀를 후려다 엽색놀이를 한다는 칠공자들은 할 일이 없어 심심해 그런 짓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따져 보거나 아니면 사람이 행한 일을 놓고 옳고 그름을 재어 보는데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 관계를 따지고 사람의 일을 시비로 걸어서 결정을 내릴 자가 없다는데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 탓으로 자주 시비가 일어난다. 시비라는 것은 네가 잘했는지 내가 잘했는지 한번 따져 보자는 것이고 네가 옳은지 아니면 내가 옳은지 파헤쳐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是)이고 저것은 비(非)라고 재어볼 수 있는 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무슨 일이 생
인간은 권력욕(權力慾)에 빠져도 몸을 망치고 재물욕심에 젖어도 몸을 망친다. 몸을 망치는 것 자체는 그 사람의 책임이므로 상관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주위에 폐를 끼치게 된다. 인간에 있어서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타인에게 봉사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자기의 존재 증명인 것이다. 연인을 위해 일하는 것만큼 인간에게서 즐거운 것은 없다. 그것을 사람들은 갸륵하다든가, 아름답다고 한다. 확실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봉사하는 것을 또 한사람의 연인이 기대하고 있을 때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출세를 하여 자기 이름 석 자를 남기려고 욕심을 부리고 덤빈다. 자장이 어떻게 하면 통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공자가 그대가 말하는 통달이란 것이 무어냐고 되물었다. 자장이 나라에서도 이름이 나고 집안에서도 이름이 나는 것이라고 말하자. 공자는 그것은 명성이지 통달은 아니라고 밝혀준다. 무릇 통달한 사람, 즉 달인은 어떠한 사람인가? 마음과 행동이 순박하고 마음과 행동이 곧으며 그리고 옳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곧 달인인 것이다. 남의 말을 유심히 귀
임금에게 아들이 많으면 임금 밑의 신하들은 누가 세자가 될 것인가를 점치고 붙을 곳을 찾는다. 이러한 꼴을 조선을 개국했던 태조 밑에서 녹을 받아먹었던 신하들이 여실하게 보여준다. 권세에 붙을 곳을 찾는 사람의 입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입질을 하게 마련이다. 권세의 판에서 변절을 일삼는 입질은 칼질을 불러오고야 만다. 조선조의 역사를 보면 태종정사(太宗定社)란 말이 나온다. 그 말은 방원이 방석을 죽이고 정도전을 죽인 난을 좋게 말해 놓은 것이다. 방원과 방석은 배다른 형제로서 임금의 자리 때문에 방원은 방석을 죽였고 제 아버지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을 모를 사람은 없다. 청산리는 백두산 북쪽 산자락에 있는 고을이다. 왜병을 궁벽한 산골짜기로 유인해 몰살을 시켰던 독립군의 승전을 우리가 잊을 수는 없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자고 만주벌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환은 서울 장안에서 일인들을 주먹으로 패대기를 치면서 우리를 후련하게 했었다. 일제시대 김두환은 깡패두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누가 그를 못된 깡패라고 할 것인가. 친일파의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 박사학위를 딸 수 있었지만 독립지사의 아이들은 학교에 갈 형편이 될 수 없었다. 해방이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개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자면 사람이 제일 문제라면서 맡길 사람을 찾을 때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고 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인품에 앞서 그 사람의 능력을 먼저 따지려는 풍조가 앞서고 있다. 이러한 풍조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뒤 끝이 별로 신통찮게 끝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람의 인품과 능력은 서로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능력은 재주에서 비롯되고 인품은 덕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덕(德)은 베푸는 마음을 앞세우지만 능력은 요구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를 천륜이라고 한다. 천륜이란 하늘이 갈래갈래를 밝혀 준다는 말이다. 노자는 하늘이 만물을 다 같이 본다는 것을 밝혔고 공맹은 하늘이 사람을 만물과는 달리 보아 준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자의 뜻을 받아 사람과 삶을 헤아렸던 맹자는 사람에게는 사람의 짓이 이고 개에게는 개의 짓이 있다고 보았다. 즉 사람과 짐승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인수지변(人獸之辨)이라고 했다. 목숨은 모두 숨을 쉬고 움직인다. 이를 생물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의식하지 않는 것은 음양(陰陽)이고 의식하는 것은 귀신이라고 보았다. 물론 여기서
마음가짐의 문제는 락(樂)으로 풀고 마음 쓰기의 문제는 예(禮)로 푼다. 락(樂)은 마음속을 문제로 삼고 예(禮)는 마음 밖을 문제로 삼는다. 마음속이란 바로 인간 그 자신을 말하는 셈이고 마음 밖이란 인간 그 자신과 타인들과의 관계를 말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락은 나 자신의 관계를 말하게 되며 예는 나와 남과의 관계를 말하게 된다. 그러니까 예(禮)와 락(樂)으로써 인간의 됨됨이가 밝혀지는 것이다. 옛날의 예 · 락은 수수했지만 지금의 예 · 락은 화려하다고 평하고 싶다. 수수한 것을 공자는 야인(野人)이라고 밝히고 화려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