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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난 원인은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세계의 사건인 것이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 “아아 어떻든 태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는 것이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니 울음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죽는 경우는 어떤가? 자살의 경우는 별도로 하고 우리는 죽으려고 생각하고 죽는 것이 아니다. 죽는 원인도 또한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세계의 사건이다. 죽으려고 결심하고 죽는 경우는 죽는 것의 목적을 안다. 무엇 때문에 죽는가는 안다. 실연(失戀)의 괴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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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3.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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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일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해답이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나의 머릿속에서 어떻든 이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장난삼아 명예를 얻고자 했던 때에는 내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는 의문이었다. 진실을 직시하고 그리고 웃으려 하던 그 때보다 무엇을 하고 있어도 문득 나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내 마음속을 스쳐갔다. 홀로 방구석에 틀어 박혀서 공부를 하다가 잠시 책에서 눈을 떼었을 때 “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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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3.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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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는 혼돈(混沌)돼 있었다. 소가 떼를 져서 거리를 배회하고 사람이 함부로 아무데로나 걸어 다니고 차량은 붕붕 클랙슨(klaxon)을 울리며 달리고 벌거벗은 사람들이 길 옆에 누워 자고 있으며 도로위에 무언가 늘어놓고 팔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있고 거리에서 뛰어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스쿠버가 달리고 자전차가 지나간다. 공사장에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너무도 무질서해서 과연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무더위와 그 혼돈 속에서 모든 것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고국에서 고민하던 것, 주저하던 것이 바보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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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3.0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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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생활 속에서 우리가 삶의 보람을 잃는 것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데는 스스로의 내적(內的)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통한 나날을 보내는 데는 인간은 스스로의 모든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상냥하게 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차가운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때, 친한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될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을 때,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고향을 잃을 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때 인간은 비통한 생각에 가슴을 쥐어뜯는다. 그 순간순간을 살기위해서 사람은 스스로의 모든 정신력을 기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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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2.2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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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모름지기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세대(世代)의 싸움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이를 먹으면 생리적으로 보수성이 짙어진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서로의 생각이나 생활태도가 달라도 살고 있는 사회는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회를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싸움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아무리 행복의 가치 기준이 다르고 행복을 찾는 법이 달라도 똑같은 하나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성”이라고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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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2.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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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권력욕에 빠지면 몸을 망치고 재물욕에 빠져도 몸을 망친다. 몸을 망치는 것 자체는 그 사람의 책임이므로 상관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주위에 폐를 끼치게 된다. 인간에 있어서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타인에게 봉사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자기의 존재 증명인 것이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연인을 위해 일하는 것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즐거운 것은 없다. 그것을 사람들은 훌륭하다, 갸륵하다든가 존경스럽다, 위대하다, 아름답다고 한다.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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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2.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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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표면적이든 형식적이든 어쨌든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지없이 고립되고 마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뚜렷하게 서 있지 않는데서 오는 막연하고 걷잡을 수 없는 의식(意識)하에 있는 불안과 본질적으로 집단에서 분리되어 버린 자기의 고독에서 오는 불안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단순히 표면적으로 만이라도 사람에게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현대인이 아닐까? 만일 표면적으로라도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없다면 개인은 완전히 사막 한복판의 외톨이가 되고 만다. 모든 것이 마음을 배려하고 세심한 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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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2.0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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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끊긴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그네가 그 산중에 은거하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나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물었다. 그 노인은 단 한마디로 “수류거(隨流去)”라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은 흐름을 따라 가라는 것이 아닌가. 산중의 개울물은 이 골짝 저 골짜기를 거쳐 마침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흐름을 따라가라는 이런 가르침은 인생의 길목에도 적용될 것이다. 세상을 살다가 살 길이 막히면 절망을 한다. 이런 때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절망할 것이 아니라 “흐름”을 찾아야 한다. 그 흐름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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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1.3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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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사랑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사랑해 주는 방법을 모른다. 거기에서 종교가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로 고독감에 빠져 괴로워하면서도 인간은 타인을 사랑할 줄도 모르고 또한 타인의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진정으로 사랑을 받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한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도 구원을 받는다. 인간의 사랑은 그 환경에 영향 받는다. 사람들과의 상호의존(相互依存)관계에서 비로소 사랑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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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1.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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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토록 많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단 한 번의 인생에, 단 한 번의 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실패라는 것이 있어서 좋을 것인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대에 이토록 슬픈 일이 있어도 될 것인가?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얻지도 못한 채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 인생은 길다. 그렇더라도 불행의 종류는 얼마나 많은가. 이 정도면 좋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예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이 우리를 덮친다. 죽을 때까지 그 모습을 바꾸면서 인간에게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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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1.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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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무대 위에서 관객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역을 하는 배우가 되려고 애쓴다. 그 사람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연극이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연극을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연극만을 하다가 죽는다. 사람이면 누구나 팔자를 타고 난다. 그리고 팔자(八字)데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연극의 대본이고 사람은 배우인 셈이다. 현대인은 관객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연극을 계속한다. 그리고 혼자만 남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쉰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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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1.1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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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유럽에서 말하는 농업이라는 말의 어감과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농업이라는 말의 어감은 차이가 있다. 유럽에서의 농업은 목축인 것이다.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 농업이 목축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여름에 티벳 지방의 산에 오르면 산중턱의 오두막집을 중심으로 한가하게 소가 돌아다니고 있다. 개는 전철에도 타고 비행기도 탄다. 어떤 사장이 기르는 개는 사장과 함께 회사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사장실에 있다. 이 개는 사장 차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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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2.01.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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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만큼 무섭고 불안한 일은 없다. 사람은 불안해졌을 때 대지 위에 길게 눕거나 뭔가를 붙잡고 싶거나 또는 뭔가를 껴안거나 한다. 그리고 자기가 분리되지 않고 껴안았을 때 마음이 안정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이 고독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령 표면적으로나마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것이 현대인 이다. 또한 어렴풋이 깨닫게 된 목적 없는 인생을 너무나 엄격하게 추구함으로써 절망에 빠지는 것을 피하려고 표면만의 인생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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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2.2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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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로제 환자는 자기가 하지 않는 것의 책임을 무언가 자기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전가시키려 한다. 일을 부탁받더라도 갑자기 두통이 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일을 하기가 싫은 것이다. 병석에 누우면 부탁받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두통이 생긴다. 현대의 무기력도 대개 이런 것이다. 무기력이라고 하는 뜨뜻미지근한 온수에 잠겨서 기분 좋게 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무기력의 푹신한 자리에서 그 무기력의 원인을 모두 현대사회 속에서 찾고 만다. 자기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쁜 것이다. 자기의 책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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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2.2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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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窮極)에 있어서 인생이 살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벌써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놀랄 정도로 긴 세월을 살아왔다. 아마도 그 살아왔다고 하는 사실이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산다는 것이 가치가 없다면 이렇게 긴 세월을 모두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 왔을까. 인생은 살 가치가 있으므로 지금까지 인간은 살아왔다. 인류의 긴 역사는 인생이 살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生命現象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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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2.1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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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젊은이들에게서 당당한 태도가 나오지 않는 것은 산다는 것에 대해서의 기초적인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적어도 현대의 청년은 언밸런스로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류대학에서 일등을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실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고민 따위라고 하는 것은 한번도 없었다. 자기 집과 학교사이를 시계바늘처럼 왕복하며 사는 것이 취미의 전부였다.”고 한다. 이 말은 사실 훌륭한 일이지만 내 생각에는 그는 지식의 레벨과 정서적 훈련과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본래 知, 情, 意의 균형을 맞추면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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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2.0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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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몸부림쳐도 미친 듯이 노력해도 이 가슴속을 도려내는 것 같은 허무한 아픔에서 자신을 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죽는 것 만은 자기 혼자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인간 존재의 고독에서 구조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그 “허무함”과 “고독”을 神을 의지하지 않고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퇴로는 사랑 다만 그것뿐이다. 사랑이외에 인간의 퇴로는 어디에도 없다. 미칠 듯이 타인을 사랑하고 미칠 듯이 인류에게 봉사하고 미칠 듯이 일을 한다. 자기가 죽어도 사랑하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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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1.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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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살고 있다. 인생은 인생 자체를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산다. 다만 살려고 하는 의욕만을 의지하고 나는 산다. 인생의 목적은 자기 내부에 있는 가능성의 실현이다. 일체의 행위는 자기 목적적이다. 그 이외에 어느 것도 찾아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말이다. 나는 학문을 위해서 학문을 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 산에 올랐으며 일하기 위해서 일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월이 꽤 오래 계속됐다. 나는 산다는 것 이외의 모든 목적을 거부하며 살았다. 그러기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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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1.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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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인생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인생은 가치가 없다. 다만 인생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사는 인간에게는 인생이 점차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어느 것이든 가능할 것이다. 어느 쪽이 바르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의 범위에는 없다.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자에게는 인생은 긍정적으로 전개하고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에게는 인생은 부정적으로 전개한다는 것뿐이다. 인생을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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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1.1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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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치의 기준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변혁의 시대인 오늘을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도 대신으로 살아줄 수 없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현대를 사는 젊은이에게 있어서는 무엇을 생각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이제는 자기 자신의 체험으로 산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을 재검토 해봐야 할 것이다. 왜 살고 있는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 왜 살고 있는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허나 그것으로 좋지 않은가. 인간이면 인간으로서 살라. 너는 인간인데 어찌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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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2011.11.08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