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제천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이광식 제천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얼마 전 '돈 살포 조합장선거 전국서 썩은 내 진동'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보았다. 이번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 출마할 입후보예정자가 조합원 자택을 방문해 고무줄로 동여맨 5만원권을 조합원과 악수하는 틈을 타 손에 쥐어주는 방법으로 조합원과 그 가족에게 총 200만원을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보며 문득 영국의 대표적 풍자화가 윌리엄 호가드가 1755년에 그린 '선거 향응'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후보자가 전세 낸 술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 큰 술통에 술을 보충하는 여자, 후보자로부터 받은 돈을 세고 있는 유권자, 술에 취해 있는 후보자와 유권자 등 여러 인물 군상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실제 1754년 영국 옥스퍼드주에서 있었던 선거부정을 풍자한 작품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에 힘입어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으며, 이 과정에서 금권정치가 판을 쳤다. 정당과 후보자는 표를 얻는 대가로 현금 제공은 물론 유권자들을 술집에 모아 며칠 간 식사와 술을 제공하고 만취한 유권자들을 마차에 태워 투표소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흔했다. 더군다나 감시인이 투표소 안까지 따라 들어가 약속대로 특정 후보자를 찍는 것을 확인할 정도로 비밀선거도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였으니 돈을 많이 쓰는 후보자가 당선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도 한때 '막걸리 선거'·'고무신 선거'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금품향응 제공이 흔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1994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제정해 불법선거운동에 대해 엄중 대처한 이래 공직선거에서는 금품·향응 제공의 잘못된 관행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도 매표행위가 횡행하고 있는 조합장선거의 현실을 보며 선거 현장에서 돈선거 척결을 위해 노력해 온 한 사람으로서 자책감과 함께 마음이 씁쓸해짐을 느낀다. 사실 조합장선거는 적은 유권자수, 농·어촌지역의 높은 연고관계 등 여러 여건에서 공직선거에 비해 돈선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2015년도에 실시한 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선관위가 적발한 위법행위 867건 중 40.3%인 349건이 매수 및 기부행위라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후보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깜깜이 선거'로 불릴 만큼 공직선거에 비해 선거운동방법이 많이 제한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 돈선거를 부추긴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돈으로 표를 사는 유혹에 빠지는 것은 소탐대실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도 망치고 돈을 받은 유권자도 처벌받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돈선거를 막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성숙한 시민의식, 깨어있는 유권자 정신의 발현에서 출발해야 한다. 돈을 주는 후보자는 반드시 신고하고 이런 후보자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 것만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다.오는 3월 13일 실시하는 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나 자신부터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고 돈선거 근절에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며,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18세기 돈선거 유령이 하루 빨리 없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