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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탑, 상처를 기억하는 법이광표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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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7  15: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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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서원대 교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미륵사지 서(西) 석탑(국보 11호).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 터에 위치한 이 백제탑은 7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대략 1400년을 흘러오며 이 탑은 많이 손상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 머릿속의 미륵사지 석탑은 처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안쓰럽고 위험천만했던 이 석탑이 18년에 걸친 해체 보수 복원 작업을 끝내고 며칠 전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 탑이 언제 그렇게 부서졌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조선시대 후기쯤 탑이 부서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탑은 원래 9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915년 무렵 사진을 보면 탑의 꼭대기 3개 층이 거의 무너져 내렸다. 살아남은 6층까지도 네 개 면 가운데 세 개 면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

탑의 수많은 석재들이 기단부 주변으로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다. 심각한 상태였다. 그러자 당시 조선총독부는 무너진 석재를 정리하고 1층부터 6층까지 붕괴 부분에 시멘트를 발랐다.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한 임시방편 응급조치였다. 그게 바로 우리가 보아왔던 미륵사지 석탑이었다.

그 상태로 세월이 또 흘렀다. 미륵사지 석탑은 더욱 악화되었다. 석재의 강도는 약해졌고 일부는 부서지고 금이 갔다. 1910년대 첨단 건축재료였던 시멘트는 석재에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1990년대 들어 “언제 또다시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당장 해체해 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갑작스런 해체는 외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왔다. 논란은 뜨거웠고 판단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치열한 논의 끝에 1998년 해체 수리로 결정이 났다. 그리고 2001년부터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약해진 석재에 충격을 주지 않고 시멘트를 떼내는 작업은 엄청난 고난도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해체에만 12년이 걸렸다.

그 못지않게 어려운 사안이 또 있었다. 탑을 해체한 이후, 어떤 모습으로 돌들을 다시 쌓아올릴 것인지의 문제였다. 9층까지 올릴 것인지, 6층까지 전체 복원할 것인지, 6층까지 부분 복원할 것인지, 시멘트 떼낸 부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를 거듭한 결과, 전문가들은 해체 직전 부서진 상태로 복원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해체 직전의 모습, 그러니까 6층 부서진 상태는 미륵사지 석탑의 원래 모습은 아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9층까지 쌓아 올리길 희망했다. 그럼에도 부서진 상태로 복원하겠다고 결정했다. 그건 미륵사지 석탑 1400년의 역사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만일 9층까지 올린다면 우리는 이 탑의 지난했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해체 보수 복원, 그 18년을 견뎌낸 미륵사지 석탑. 며칠 전 가설 덧집마저 벗어던졌다. 7세기에 다듬어 누렇게 퇴색한 돌들 사이로 21세기 뽀얀 돌들이 보인다. 저것이 1400년의 흔적이다. 비록 부서지고 훼손된 몸이지만 다시 보니 웅장하고 당당하다. 안쓰럽기보다는 듬직하고 넉넉하다. 상처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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