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늦은 가을 미처 겨울을 준비하지 않은 마음 틈새로 바람이 헤집고 들어왔다. 겨울로 가는 길목의 추위는 늘 마음의 한기를 먼저 체감하게 한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한기는 쓸쓸해진다. 그 무렵 오랫동안 격조하게 재냈던 사람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순전히 바람 탓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이 편한 것은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의 웃음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늘 내가 먼저 안부를 묻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약속을 정했다. 그런 것이 나에게 중요하진 않았다. 내가 먼저 약속을 제안하는 경우의 사람들은 내게 그중 소중한 인연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마음에 화상을 입을 만큼 너무 뜨겁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차갑게 식지도 않게 가꾸어가는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다.

밥값을 슬쩍 미리 계산을 했더니만 머쓱해 하면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붕어처럼 차를 마시냐고 핑계를 대면서 살가운 눈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떤다. 딱 커피 값에 준하는 선물로 받고 싶다 하면서 단골 화원으로 그의 팔을 이끌고 갔다. 청초하게 흰색 꽃이 피는 바이올렛 꽃 화분 하나를 갖고 싶었었다. 커피 한잔 값이면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꽃 화분이다. 바이올렛 화분 하나를 골라서 한손에 들고 있는 나의 시선이 바로 옆에 서있는 동백나무에 꽂혔다. 오래전부터 동백나무 하나를 키워서 집에서라도 동백꽃을 보고 싶었었다. 동백꽃 피는 선운사를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백꽃은 겨울에 피는 꽃이라서 더 아름답다. 겨울에 핀다 해서 동백이라고들 하는가보다. 거친 바다의 해풍을 온 몸으로 맞으며 추운 겨울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지만 피는 꽃이다. 동백꽃은 차디찬 겨울 바다를 온 몸으로 끌어안고 품어주며 피는 꽃이다. 동백꽃의 꽃말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또는 못다 이룬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시인들은 동백꽃을 보면서 붉은 선혈을 쏟아 내듯이 절절한 시를 썼는가 보다.

그는 동백나무에 머물러 있는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선뜻 안겨주었다. 창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나의 사랑을 머금고 꽃망울을 키우고 있었다. 수줍게 여물어 가는 사춘기소녀 가슴의 핑크빛 꽃망울이다. 입을 꼭 앙 다문 동백 꽃망울은 입술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아주 조금씩 꽃 입술을 열고 있는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그에게 전송해줬다.

동백꽃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겨우내 새삼 꽃정이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에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다.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여인의 모습으로 피었다. 벌과 나비가 없는 이 겨울에 피어난 동백꽃을 위해 나는 동박새가 되기로 했다. 동박새는 달콤한 그의 꿀만을 탐하지 않고 부지런히 꽃가루를 옮겨주며 더 많은 꽃을 피우게 해야 하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아마도 동백꽃과 동박새는 분명 전생에 필연의 인연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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