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저 혼자 벙글고 있는 노르스름한 꽃을 발견하고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남녘에서 화려한 꽃소식이 들려와도 먼 나라 일인 양 무심했는데 초라한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아침부터 가슴이 벌렁거렸다.

초와 분을 다투는 출근 시간대에 나무와 꽃에 뺏겼던 마음을 수습하느라 급하게 일어섰다. 굽혔던 무릎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매화 마을과 산수유 마을과는 감히 비교되지 않는 마른풀이 우거진 율량천 도랑가에서였다.

비록 미세먼지가 허공을 채웠더라도 3월의 봄볕은 따스했고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온전히 태양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시려 가방 속 선글라스를 꺼내려다가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쯤으로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에야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일상화되었지만, 필자가 젊었던 1970년대에는 라이방 하나쯤 걸치고 외출하면 일단 멋쟁이라는 평을 받았다. 시력보호보다 외모를 받쳐주는데 일조했던 품목이었으니 옷과 핸드백에 이어 명품 선글라스 하나쯤 가지고 싶어 안달하는 일은 당연했다.

뉴스 속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이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검은 안경을 쓰고 있다. 깃발과 시커먼 안경의 부조화가 익숙해진 현실을 개탄하면서 오래도록 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렸다는 지인을 떠올렸다. 그도 항상 시커먼 안경을 썼다. 단체로 다녀오던 행사 길에서 감정의 조절 끈을 놓친 그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의 곁에는 다리가 부러진 검은 안경이 나뒹굴고 있었다.

검은 안경을 쓰면 표정을 감출 수가 있다. 타인에게 자기 눈이 보이지 않으니 대인기피증이 있거나 자신감이 부족해 남 앞에 나서기가 두려울 때 이만하게 자기를 보호하는 방패는 없다. 그래서 조울증을 앓던 그도 밤낮없이 검은 안경을 썼다. 검은 렌즈를 통해 검게 보이는 세상에서 그는 무엇을 구했던 것일까?

140년 전통의 바슈롬사는 ‘눈부심 방지용’ 렌즈를 탄생시켰다. 이 회사가 만든 안경은 태양광선을 막는다는 뜻의 ‘레이밴’으로 명명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선글라스를 우리식 발음으로 라이방이라고 불렀다.

선글라스의 기원을 중국 송나라 때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죄인을 심문할 때 주로 썼다는데 재판관은 범인이 눈치를 보지 못하게 하느라 수정에 연기를 쪼여 만든 안경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가을 DMZ 시찰 시에 햇빛이 너무 강렬해 썼다던 청와대 인사의 선글라스를 두고 굳이 자기 정치를 했다고 우기던 이들은 판관 앞에 선 범인 같은 심정이 들었던 걸까?

외눈증은 배아의 앞뇌가 눈구멍을 2개로 적절하게 분리하지 못해 생기는 선천성 질병이란다. 시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속의 비목어도 하나의 눈만 가졌다. 눈이 하나밖에 없으니 물고기인들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러다가 같은 신세인 짝을 만나 의지하며 살았고 한마리가 죽자 나머지 물고기는 죽은 물고기 곁을 지키며 같이 죽어갔다.

시커먼 렌즈로 가려 보이지 않는 눈들도 공중파 방송은 외면하고 가짜가 만연한 유튜브만 본다고 한다. 내 눈만 가리면 하늘 전체가 가려지는가. 한쪽만 보다가 교통사고가 생기는 법인데 외눈박이로 살아가려고 작정한 그들은 목숨을 다해 사랑할 만한 사람을 가지긴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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