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변호사

 

[이영란 변호사] 최근 진행하고 있는 이혼 사건 중 재산분할문제로 인해 상호간 공방이 치열하게 오가는 사건의 기록을 보다가 문득 작년 10월경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충북지방변호사회와 러시아 이르쿠츠크(Irkutsk) 변호사회와의 국제교류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했다가 들은 러시아 이혼제도의 내용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이혼제도는 몇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는데, 우선 러시아에서는 혼인파탄의 책임 유무와 관계없이 배우자 쌍방 모두가 이혼청구권을 갖는다. 다만 아내의 임신기간, 자녀 출생 후 1년 이내에는 아내의 동의 없이는 남편의 이혼 청구가 불가능하며, 이는 임신 기간 및 출산 후 1년 동안 이혼과 관련된 불필요한 동요와 걱정으로부터 모자(母 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라고 한다. 이러한 제한은 남편에게만 적용되며, 아내는 임신기간 및 자녀가 만1세가 되지 않은 경우라도 언제든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재산분할과 별도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수입이 없는 배우자에 대한 생활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으며, 재산분할의 경우에도 부부 중 누가 일을 하고 누가 살림을 하는지에 관계없이 분할 비율이 동등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유명의와 상관없이 양 당사자의 실질적 협력을 토대로 이룩한 공동재산이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며, 당사자의 기여도 등 제반사정을 검토하여 분할 비율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혼 소송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퉈지는 부분이 재산분할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재산분할시 기여도를 따지지 않는 것은 물론 혼인유지기간도 고려하지 않고 50:50으로 나눠 갖도록 한다니 신선하기도 하면서 충격적이기도 했다. 또한 법원이 직권으로 부부의 재산을 조사하는 시스템이 있어 상대배우자가 숨겨둔 재산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러시아의 제도가 이혼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배우자를 더 보호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다만 러시아는 재산분할 대상 재산에 결혼 이전에 형성된 재산은 포함되지 않으며, 혼인 중 타인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도 분할대상이 아니라고 하니, 그런 재산도 그 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에 기여한 것이 인정되면 분할대상으로 보는 우리나라 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불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제도든 그 나라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획일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 중 우리 법제에서도 활용 가능한 합리적 방안은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그 제도가 보호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보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사회건 제도는 사회가 발전해 가는 속도보다 느리게 발전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사법제도는 제도의 특성상 더욱 그러하다. 제법 두툼한 기록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하면 모두가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잠시 딴생각을 해봤다. 그 어떤 소송보다도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분야가 이혼소송인 것 같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파란 하늘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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