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모처럼 미세먼지가 ‘보통’이라 과분한 마음으로 우암산에 오른다. 정상에서 본 하늘도 쪽빛으로 반겨주며, 지난주 발표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기뻐하는 듯하다. 요즘 같으면 ‘미세먼지 좋음’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니 ‘보통’만 해도 감지덕지로 여겨진다. 다녀오는 길에 집 부근 길가에서 아담한 책장이 나에게 손짓하며 하소연한다.

‘차에 실려 가면 분쇄될 수도 있으니, 데려가 달라.’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누가 이사를 하며 내놓았는지 새것처럼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하다. 어저께 책 정리를 하다 보니 책장이 모자라 나도 모르게 만지고 있다. 내 마음 같으면 번쩍 들고 오고 싶지만, 혼자 들 수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가족 화목을 위하여 아내와 상의해야 한다.

귀가하여 주방에 있는 아내에게 책장 이야기를 하니 말없이 눈만 흘긴다. 지인들이 보내준 소중한 수필집 등을 받아 읽고 꽂다보니 모자란데, 가까운 곳에 이런 마침맞은 책장이 있으니 같이 가서 갖고 오자고 하니, 가구점에 가서 하나 사주겠다고 한다. 마치 나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살고 아내는 며칠 전 발표한대로 3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는 괴리감을 느낀다. ‘이상하다. 나보다 아내가 더 그런 걸 쓰자고 할 것 같은데…….’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국은행이 지난주(3월 5일) 공식 발표하고, 신문과 방송에서 때를 만난 듯이 요란하게 보도하고, 수십 군데 채널에서 일삼아 재방송까지 하니, 언중(言衆)의 한 사람인 필자도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하다. 2만 달러를 넘어선 지 12년 만에 명실상부한 선진국 위치에 오른 것이라지만, 필자처럼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궁금하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월급이나 소득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으로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대기업 같은 선도 주자의 성과가 중소기업 등 후발 부문으로 유입되는 효과인 이른바 ‘낙수효과(落水效果)'가 별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평균 소득은 늘었지만 그 혜택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는 양극화도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지는 이유라고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1천349달러로 우리 돈으론 3천450만 원 정도로 잠정 집계되었다. 지난 2006년 2만 달러를 넘고 12년 만에 3만 달러 시대를 연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30-50 클럽’에도 합류하여,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7번째로, 경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6·25 전쟁 직후 대외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불과 약 70년 만에 당당하게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선 신화를 쓴 것이니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싸늘한 것이 과제이다.

앞으로 정치, 경제, 교육, 복지 등 모든 부문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쇄신하고 화합하며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 고용과 소득의 양극화 등 구조적 과제를 해결하여 그 다음 단계인 ‘4만 달러 시대’를 맞이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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