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 (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 언론인 (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박정희 유신 독재 때다. 유신헌법아래 처음인 제9대 국회본회의가 1975년 10월 열렸다. 10월8일, 사회분야 대정부질문에 들어갔다. 충남 서천출신인 남장여성 의원인 신민당 소속 김옥선 의원이 사회분야 질문자로 나섰다. 그는 “국민과 역사 앞에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고발한다는 심정으로 나왔다”고 했다.

곧 박정희 독재를 비판했다. 그는 세계적인 정치학자 ‘뉴만’이 독재체제의 통치기술의 특징을 여섯 가지를 들어 서두를 꺼냈다. 그는 “첫째 전쟁심리 조성, 둘째 사이비 민주주의적 제도, 셋째 경찰의 ‘테러’, 넷째 매스컴의 통제, 다섯째 안정에 대한 약속, 그리고 여섯째가 지도자 원리”라 했다. 본회의장이 소란해졌다.

발언은 신랄했다. “박정희 정권의 끊임없는 전쟁위험 경고 발언 속에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는 안보를 앞세운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회자인 김진만 국회부의장이 일방적으로 정회를 선언했다.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가 의원총회를 소집됐다. 국회법을 어기고 대통령을 모욕했다며 김 의원을 징계하기로 했다. 징계 안은 물리적 충돌 끝에 본회의로 넘겨졌다.그는 본회의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직에서 사퇴했다. 이른바 ‘김옥선 의원 파동’이다.

4년 뒤 1979년 10월 4일도 오욕의 국회사를 썼다. 공화당과 유정회 단독으로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의원직도 제명했다. 그해 9월16일자 ‘뉴욕타임스’지에 실린 그의 회견이 문제가 됐다. 그는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중단과 민주화조치를 취하게 압력을 가하라’고 말했다. 그게 꼬투리였다. 청와대와 공화당은 발끈했다. 헌정을 부정하고 사대주의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김 총재가 제명되자 그달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공화당은 '사퇴서 선별수리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부산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 이후 김영삼의 정치텃밭인 부산·마산·창원에서 10월 15일부터 반정부시위인 ‘부마항쟁’으로 이어졌다. 이 항쟁은 곧 ‘10.26유신체제’를 종말을 앞당겼다.

지금은 당시 유신 독재 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민주화 시대다. 그때와는 체제가 크게 다르다. 그런데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연설이 큰 파장이다.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얘기를 듣지 않게 해달라’는 주장 때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의원들이 집단항의, 그의 연설이 10여 분간 중단됐다. 본회의장은 여야간 고함과 욕설, 몸싸움과 퇴장, 연호와 거꾸로 박수로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중재와 경고로 가까스로 진정됐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났으나 후유중은 크다. 그새 민주당은 나 원내대표를 윤리위에 제소했고, 한국당 역시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를 제소하는 맞불로 대치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 원내대표가 블름버그 통신의 기사를 인용했다고는 하나 청와대와 여권으로선 섭섭하기 이를 데가 없다. 여권은 긴장된 한반도 긴장완화의 방안을 이런 시각으로 보는데 서운 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을 공격하는데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종북, 좌파 등의 이념공세는 ‘국가원수의 모독’이며, 연설의 국회와 의원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여기에는 남북, 북미정상회담에 다른 엇갈린 시각과 각종 법안과 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대치해온 터라 골이 깊다.

나 원내대표와 한국당의 기조는 그 연설과 수위가 같다. 그리고 공세의 고삐를 더 죄고 있다. 국회 연설은 국민의 뜻을 전하는 곳이라느니, 정부여당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라느니, 원내대표의 의사당발언조차 막는 독재적 발상이라는 말로 응수한다.

민심도 엇갈린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국가원수의 모독이라는 민주. 진보진영의 시각 그것이다. 반면 할 말을 했다는 보수진영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다. 국론이 이처럼 분열되니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가나.

연초부터 개점 휴업에서 가까스로 3월초 문을 연 국회가 이 지경이다. 더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 방이나 페이스 북의 글들이 허무하다. 대화와 타협,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은 어디갔나.

내년 총선을 1년여 앞으로 선거제도개혁을 놓고도 초긴장 상태다. 여야4당과 한국당간의 대화는 싸움판이다. 봉급쟁이 카드소득공제축소니, 청년 일자리니, 노동관계법 개선이니 적잖은 현안이 산적했는데 협치는 찾아볼 수 없다.

싸잡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국회가, 국회의원이, 여야 국회의원이 왜 존재해야하는 지를 곱씹어 봐야한다. 어느 시사평론가의 말마따나 ‘한국정치는 누가 누가 잘하나 게임이 아니라, 누가 누가 누가 덜 잘못하나 게임’이라는데 씁쓸하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에 항거한 김옥선. 김영삼 시대와 나경원의 연설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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