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서로 욕질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인가? 정파와 이념에 따라, 진영과 편 가르기에 따라, 누가 갑이고 을이냐에 따라 막말을 주고받고 서로 욕하고 저주하고 혐오한다. 이젠 안 참는다며 똑같이 맞받아친다. 아이들은 어른에게서 배울 게 없다고 욕하고 어른은 아이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욕한다. 여기저기서 증오와 저주가 난무한다. 지난 12일 오전에도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이 중단될 만큼 고성이 오고갔다.

언젠가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늦은 밤에 술에 취한 한 중년남성이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급기야 두 명의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창 실랑이가 벌어지던 중에 옆의 벤치에 앉아있던 한 청년이 일어나 “그만 하세요” 라며 경찰과 취객을 떼어놓더니 갑자기 이 취객을 끌어안고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그 남성은 처음엔 놀라 뒷걸음을 쳤지만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동안 청년의 품에서 흐느꼈다. 제압하기 어려워보이던 취객을 ‘포옹’으로 진정시킨 것이다.

다양한 폭력이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행위나 다른 사람을 이기려 들고, 깎아내리고, 반박하고, 조종하고, 비난하고, 강압하며 겁주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육체적 폭력도 문제지만 언어폭력이나 사이버 폭력도 엄청나다. 이러한 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신체폭력만큼 크며, 회복하기까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국 고대의 병법서 <군참(軍讖)>에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있다.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어하고, 약함이 강함을 제어한다. 부드러움은 덕이고 강함은 적이다. 약함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강함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軍讖曰 柔能制剛 弱能制强 柔者德也 剛者賊也 弱者人之所助 强者人之所攻)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중국의 황석공이 지었다고 하는 <삼략(三略)>에도 있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굳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유연한 사고와 부드러운 자세는 편견과 차별을 밀어내고 새로운 관계와 치유를 위한 공간을 만든다. 인간의 행복은 주위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친 운동으로 보이는 유도(柔道)의 ‘유’는 ‘부드러움’이다. 말 그대로 부드러움을 이용해 상대의 강한 힘을 제압하는 기술이다. 지하철역의 중년남성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력과 공권력이 아닌 위로와 공감의 제압이었다.

협박도 위협도 무력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을 부드럽지만 강한 포옹으로 따뜻하게 진압한 청년의 모습은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모습을 보여주는 멋진 예다. 우리나라가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폭력이 아닌 부드러운 공감과 배려의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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