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학 전 진천군청 회계정보과장

[정종학 전 진천군청 회계정보과장] 근래 들어 동장군이 힘을 못쓰다보니 하얀 눈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올겨울에도 두세 차례 흰 눈이 내렸지만 감동을 선물하기는 부족했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흰색으로 감싼 만물의 형상을 보지 못해 아쉽다.

앞으로 행여나 눈이 내린다 해도 반짝할 듯하다. 겨울의 말미에서 온화한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겨울 꽃을 꼭보고 싶은 마음이 진동하며 어디론가 떠나가길 재촉하고 있다. 이에 덩달아 이곳저곳에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고 있다.

우리의 눈길을 유혹하는 그 꽃은 광활한 바다를 품안에 껴안아야만 핀다. 한반도의 남단 환상의 섬 거제도 안의 섬 지심도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들뜬 마음과 몸을 전용버스에 모시고 장승포항까지 가는 동안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본다.

청춘시절 외로운 초소에서 영롱한 불침번으로 망막한 바다를 수호한 적이 있었다. 바닷가는 내 생각에 감정의 불꽃을 새롭게 피울 연료가 많다. 바닷가를 단짝처럼 벗을 삼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본 바 그렇다.

그 당시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연스럽게 감상하며 내 마음이 물처럼 부드럽게 순화되고 정화된 듯하다. 그 모든 추억과 기억이 내 세포에 저장돼 지금도 친근감이 들고 있다. 해변을 산책하면 이런 것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은 아름다운 겨울 꽃은 해풍에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나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또한 그 주변에는 희귀한 괴암괴석들이 꽃나무를 감싸며 든든하게 보호하고 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유인하는 것 같다.

수만 년 동안 세찬바람과 파도를 묵묵하게 받아낸 다양한 조각품도 감상 할 수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나무들은 인간의 번민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여기는 같다. 그들을 바라보면 지나온 내 삶의 인고와 견줄만하다.

그들은 보는 각도와 수시로 변하는 물빛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또한 큰 바위든 작은 몽돌이든 반질반질하게 은빛을 내고 있다. 마치 오랜 세월 교양과 덕망을 쌓아온 선비의 인품처럼 윤기가 흐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베일에 싸여있던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모난 바위와 뿔난 돌은 지금도 파도의 물결이 거품을 내며 다듬고 있다.

여객선에 승선해 곧바로 따라오는 갈매기와 사랑의 대화를 재미있게 나누다보니 선착장에 도착한다. 외딴 섬에 발 도장을 찍는 순간 꽃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인어공주가 반기며 안내하는 오솔길을 따라가니 칠십 퍼센트 이상의 동백 숲 겨울 꽃길이 펼쳐진다.

아름드리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동백나무가 긴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윽한 향기를 피우며 붉게 핀 꽃을 어루만지고 스킨십을 해본다. 귀여운 목소리로 "나는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합창하는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감미로운 선율도 잔잔히 흐른다.

동백(冬柏)꽃은 맹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겨울 꽃길을 걸어보니까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사랑의 열정이 발산하는 듯하다. 파도소리를 벗 삼고 꽃길을 유람하며 자연과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즐거움과 색다른 교훈을 얻는다.

우리의 삶이 좀 힘들고 어려울 때 겨울의 끝자락에 화려하게 수놓은 겨울 꽃처럼 담대한 용기를 본받았으면 한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고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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