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여유로운 어느 날, 문득 미국에 있을 때 즐겨 먹던 양파무침이 생각났다. 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힘들고, 한인마트에서 사자니 너무 비싸고 김치냄새에 질색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먹던 반찬이다. 양파를 썰어 프라이팬에 물을 조금 넣고 볶다가 매운 맛이 빠지면, 참기름과 고춧가루, 간장으로 양념하여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주면 끝이다. 만들기도 간편하고 무엇보다 내 주변의 모든 느끼함 들을 싹 날려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만들면서 옛날 추억도 생각나고, 달콤한 양파가 짭쪼롬, 매콤 그리고 고소함을 입고 내 기억 속에 저장된 모습으로 나타날 기대감에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멋진 뮤지컬 공연 오프닝을 기대하며, 금방 지은 밥과 양파무침을 가지런히 담아 차려놓았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내 입속으로 초대한 그들이 공연을 시작한 순간,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 나온 한 마디는 “뭐야 이건!” 이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와 함께 그들을 무대에서 뱉어버렸고, 당장이라도 티켓을 환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부러 양파를 사와서 만들었던 시간과 노력, 나의 설렘과 추억은 간데없고, 엄청난 양의 양파무침이 환불도 못하고 한참이나 남은 공연처럼 못쓸 모양새로 싱크대 반찬통 안에 무리지어 있었다.

생수를 마시며 내 혀를 달래고, 허망하게 양파무침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맛있었는데......” 내 향수를 달래주고 멸치국물 한 번 우렸다가 “What's the smell!”(이게 무슨 냄새야!)이라며 매너 없이 소리 지르던 어린 룸메이트와의 갈등도 피할 수 있게 해주던 내 소울푸드(soul food)인데.......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실소가 툭 하고 터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항상 느끼한 냄새와 음식으로 둘러싸여 있던 내겐 너무나 상큼했던 양파무침을 오늘 이전에는 한 번도 해 먹지 않았다는 점이다. 너무나 맛있는 김치를 항상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양파무침을 한국에서는 해 먹을 필요가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만난 나의 양파무침은 30년 만에 만났지만 추레하게 변해버린 옛사랑처럼 나의 마음을 떠나갔다.

이 허망함을 나누기 위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네가 한국에 오니까 맛이 없지!” “여긴 먹을 게 많잖아!” 어머니의 연륜과 지혜는 내 상황을 더 확실하게 정리해주었다. 중국의 옛 문헌인 승고승전에 보면 원효대사께서 밤에는 달게 마신 물이 다음 날 해골에 고인 물인 것을 발견하고 구토를 하는 순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를 깨달으셨다는데, 나는 인생만사 양파무침(아무리 절대적으로 확신하던 것도 상황이 바뀌면 나도 따라 바뀐다)을 깨달은 것 하다. 원효대사께서는 해골물을 드시고, 깨달음을 얻고 당나라 유학을 그만두셨다. 나는 더 이상 맛있지 않은 양파무침을 먹고 내 마음과 반찬통을 비웠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