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욕실 문 사이로 ‘사아악 사아악’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가뭄에 물대는 호수가 낡아 나달해진 틈새로 힘껏 뿜어지는 것처럼 변기에 연결된 스프레이건의 목덜미에서 내뿜고 있다. 처음엔 물방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며칠 새 뚝뚝 떨어지고 어느 날 부턴가 내리 쏘기 시작했다.

관리실에서 추천해준 스프레이건이 도착하자마자 남편과 작은 아이가 교체를 하려 씨름을 했으나 일체형처럼 요지부동이다. 남자라면 못하는 이가 없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집은 누구하나 해내지를 못한다. 때마침 휴가 나온 장남은 그래도 군인정신으로 성공 할 줄 알았는데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내 차례인가. 손끝이 야물지 못하다고 식구들을 타박하며 나섰건만 나 또한 헛손질이다. 수건으로 감싸 다시 한 번 도전해도 비웃음소리만 사악 거린다. 하는 수없이 관리실로 한달음에 달려가 상황을 설명했다. 담당자가 방문해 중간 밸브를 잠그고 머리를 잡아 목을 휙 돌린다. 수선을 떨어댄 것이 민망하리만치 가뿐히 분리되고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물방울이 맺힐 때 까지만 해도 참고 살아야지 싶었다. 그러나 뚝뚝 떨어져 내릴 때쯤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수도세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여름에는 농업용수와 식수까지 부족하여 겪은 고초는 말이 아니었다. 후세에 물려줄 것도 없는데 선대로부터 받은 환경이라도 덜 망가뜨려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지 내 생전은 부족한대로 살아가겠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 되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희뿌연 물을 긷는 모습을 종종 TV를 통해 보았다. 그만큼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 우리 집 바깥마당 끝자락에는 우물이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빨래터이기도 했지만 끼니때마다 푸성귀를 씻느라 두런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양지바른 곳의 봄나물은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여 반찬으로 거듭나 밥상에 올랐었다. 우물은 신령님께 바치는 정화수가 되기도 했다. 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나 가족의 건강을 염원 할 때도 어머니들은 몸을 정제히 하고 정화수를 올렸었다.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귀히 여겨 신령에게 첫 새벽의 것으로 바쳤으리다.

그토록 귀한 물을 빌어 이런 말을 한다. ‘물 흐르는 대로 살자.’ 순리를 말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기꺼이 받아들이며 순응하자는 뜻일 게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하지만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역류하기도 한다. 어느 지점에서는 멈추게 하고 필요 할 때만 받아쓰는데 가끔은 도구들이 노쇠하거나 망가지면 물은 걷잡을 수 없이 원래의 성질을 발휘한다. 그러니 스프레이건 속의 고무 배킹이 제 구실을 못하여 내뿜던 물줄기는 그저 제 갈 길을 가던 중이었다. 나름대로 처한 상황에서 순리를 따르는 것이었을 게다. 그 길을 다시금 인간의 욕심으로 가로 막았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으로 순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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