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 (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 언론인 (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2차 대전 초 윈스턴 처칠은 수상과 국방장관을 겸하고 있었다. 그 무렵, 그가 북아프리카 작전에 가장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하원에서 불신임동의를 받게 되었다. 그가 하원 연설대에 섰다. 그리고 90분간 열변을 토했다. 그가 연설하는 동안, 야당 의원이 ‘처칠탱크’에 대해 비난성 질문을 했다. 결함 탱크로 국고를 낭비했다는 것이다. 이게 그의 아킬레스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A22라는 탱크는 설계가 끝나자마자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우려대로 결함 투성이였습니다. 제 결정이 잘못된 것이어서 이름을 ‘처칠탱크’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결함을 교정했습니다.”

그의 시원한 시인에 야당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칠은 “내 이름처럼 이 탱크가 투박하지만 강력할 것입니다. 대영제국의 깃발아래 무적 처칠탱크가 될 것입니다. 승전으로 보답하렵니다.” 농담섞인 그의 연설에 여야의원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다. 실수와 과오를 사실대로 말하고 잘못을 사과하기 때문이다. 야당역시 솔직한 사과와 시인을 너그럽게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도 부럽다. 이게 영국 민주정치의 풍경이다.

그럼 우리의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정치권의 허다한 말싸움에 진저리가 난다. 그런 판에 진솔한 사과가 찾아보기 드물다. 그중에도 몇몇 일에도, 속 시원히 잘못을 인정하면 될 일이다. 한데 침묵 뿐이다. 청와대나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장관 몇몇과 몇몇 장관후보자의 ‘사과, 죄송, 송구, 책임통감...’이 이어졌다. 그중에는 진실한 사과도 있었다. 하지만, 의례적인 ‘립서비스’사과도 있었다. 그런데도 사과해야할 사람들은 입을 다물거나 군색한 반박 뿐이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말실수를 사과했다. 그는 지난 20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서해수호의 날'에 대해 "서해상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남북 간의 충돌들, 천안함을 포함해 여러 날짜가 있기 때문에 다 합쳐서 추모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으로 본다'고 했던 사안이다. 자유한국당은 "국방부 장관의 안보관으로 용납될 수 없는 반헌법적 인식"이라며 그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냈다. 그러자 일주일 뒤 "진의와 다르게 오해를 일으켜 송구하다"며 말을 바꿨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강경화 장관역시 국회 대정부질문 때 사과를 했다. 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순방때 외교결례 논란과 관련해서다. 이들은 “부끄러움과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책임자로서 잘못을 인정했다. 사과의 행렬은 장관 후보자들의 국회인사 청문회에서다. 3.8 개각을 통해 지명된 7명모두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합창을 했다. 후보자들은 각종 도덕성 의혹이 드러나자 청문회에서는 해명은커녕 ‘죄송·불찰·송구’로 납작 엎드렸다.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탈과 편법 행위는 유감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국민의 눈높이에 안맞는 행위라느니, 자료가 없다느니, 아내가 한일이라며 위기를 넘겼다. ‘죄송·반성·송구’로 아무 일 아닌 듯 넘어간 것이다. 이는 면피성, 꼼수 사과일까. 아니면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일까. 이와 달리 사과는 커녕 반박과, 침묵도 문제다. 현정부의 초대 각료인 김은경 전 환경부장과의 검찰 사법처리에 대한 전·현직 청와대 홍보라인의 반박이 그것이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맥락이 같다. 자기사람 심기의 ‘블랙리스트’는 전 정부의 ‘적폐’이자 현 정부의 적페청산의 ‘동력’이었다. 적폐로 몰아부치던 그 기억을 잊었나.

김 전 장관의 사법처리나, 3.8 개각 지명자들의 문제는 인사라인이 사과해야 일이 아닌가. 그중에도 이들을 추천한 이낙연 총리나 이들을 검증한 청와대 조국민정비서관, 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하는 일이 먼저다. 이 결격들을 덮어두고 반박과 침묵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구호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시인하는 정치, 또 진실을 믿어주는 정치,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상대를 믿어주는 아량이 우리에게 필요한 때다. 협치의 시작이자, 선진국민으로 이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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