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좋은 아버지는 많은 말로써 가정을 민주적으로 꾸려나간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정은 말이 적거나 심지어는 없기까지 하다. 아버지는 과묵해야 무게감이 있는 것이지 말이 많으면 가볍고 헤퍼 보여서 신뢰가 떨어진다고도 했다.

그러나 말이 없으면 다가가기도 힘들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내와 자녀는 숨을 죽이며 눈치를 보게 되고 점점 경직되어 멀어지게 된다. 아버지의 따뜻한 말이 그리운 가족은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게 되며 결국 아버지는 스스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들어야 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을 해야 하며 설득하거나 협상해야 할 경우도 있는데 이를 회피하는 것을 미화하여 과묵이라고 했다. 통보하고 명령하면 빨리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데 질문하고 응답하면서 서로 조정하는 과정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를 거부하고는 짐짓 무게감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민주주의와 효과적인 의사 전달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자녀는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게 되고 갈등과 문제 해결법도 배우며 훌륭한 지도자로 자란다.

민주적인 아버지는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많은 말이 필요한 협상을 자주 사용한다. 자녀와의 ‘상호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녀는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겠다고 하고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할 경우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바로 협상을 통해서 서로 양보하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협상 시 기억할 사항이 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다고 모든 경우마다 협상해야 할까? 학업이나 가치관 또는 신앙 문제 등 변치 않는 원리와 원칙, 아버지가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 유행이나 개인적인 취향, 문화나 사회 조류 등에 관한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든 것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려면 자녀가 불만족하여 관계가 나빠지며 관계가 나빠지면 아버지는 효과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시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상호 만족이 대단히 중요하다. 반드시 기억할 것은 협상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나누되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미리 생각하며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라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이미 굳어진 머리와 식은 가슴을 가진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 하기’에 참 힘든 세상이긴 하다. 과묵을 큰 가치관으로 삼고 살았던 지난날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끊임없이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말을 하되 자기 의견만 강제하지 말고 자녀의 의견을 경청하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렵고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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