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헌신과 낭비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자신의 것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던 물질이던 노력이던 여하튼 내 것을 써야 한다. 그리고 둘 다 내가 들인 노력이나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혹은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쳤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이 혼란의 시기를 기회로 삼아 많은 유익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라를 위한 헌신이 오히려 인생의 낭비가 아닌지 회의적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노력만큼 분명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고민하지 않겠지만, 결실이 불분명할 때, 혹은 결실이 애초에 보장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을 하곤 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분명하게 내 자신을 위한 일이니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을 다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떻게 보면 ‘공부해서 남 주지 마라’ 또는 ‘공부해서 남 줄 필요 없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최근 온 나라가 가진 자들의 문제들로 인해 시끄럽다. 돈이 많은 사람, 힘이 있는 사람들이 일으킨 문제들로 인해서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 자리에 올라갔는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모르는 것이다. 공부하는 법은 잘 아는데 나누는 법은 모른다. 왜 그런가? 공부해서 남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가족, 우리의 자녀들에게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한다. 의미 없는 일을 하지 말고 의미 없이 시간을 쓰지 말라고 말이다. 그렇게 오직 자신의 분명한 목표와 유익을 위해서 달려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그와 같은 방법이 안겨준 성공의 모습이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무엇이든 남들보다 더 빨리 가지기 위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인생의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달려왔는데 정작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성공한 인생과 잘 사는 인생은 꼭 같은 의미는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남을 위한 모든 것이 다 낭비로 보일 수 있지만 잘 사는 인생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헌신의 삶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나아와 성경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는 성경의 모든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은 기독교의 특징을 인생을 낭비하거나 성공을 멀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나는 물론이거니와 그에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남을 사랑하는 일이야 말로 자신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때로 성공하는 인생과는 멀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잘 사는 인생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부해서 남을 주지 않으면 성공하는 인생은 살지언정 잘 사는 방법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공부해서 남 주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위해 노력할 때 우리 인생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고로 그 무엇보다 공부해서 남 주는 인생은 낭비가 아니라 헌신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수는 우리에게 낭비를 가르치기 위해 ‘사랑’을 말한 것이 아니다. 사랑의 헌신이야 말로 우리 자신의 인생은 물론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는 기적의 삶임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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