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정우천 입시학원장] 15학번으로 철 늦게 간호학과에 입학했던 절친이 지난 2월에 학업을 마치고, 종합병원 중환자실 근무를 시작했다. 젊은이도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친구의 도전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주변 동년배들은 이미 정년을 넘겨 퇴직했거나 무심한 부모님의 늦은 출생신고 덕에 아직 조금 더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도 퇴직이 코앞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들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하며 좌판을 걷고 파장하는 분위기인데 이렇게 새 출발을 하는 친구가 참으로 대단하다. 남자 드문 간호학과에, 그것도 늙은 남자 나이팅게일이라니……. 그것만으로도 특별한데 친구는 심지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미 경제학과를 나와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삼십 대 중반에 사범대에 다시 입학해 교사로 후진 양성에 힘쓰더니 세 번째 대학에서는 간호학과로 인생 이모작도 모자라 비닐하우스 만들어 다모작하는 친구다.

어릴 때 엉뚱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어머니는 "미친놈이 범 잡는다."며 칭찬인지 야단인지 모를 말씀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은 아마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각 없이 범을 잡으려고 덤비는 무모함에 대한 우려와 대부분은 실패하고 자신을 보전하기도 힘들 테지만 범을 잡는 특별한 일을 이루는 자도 그 무모한 도전정신에 있다는 기대감에 대한 말이었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이렇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며 문명을 만들고 이른바 인류세(Anthropocene)라 불리는 현재에 이른 것은 대부분의 현상 유지에 바쁜 평범한 사람에 더해, 모험과 탐험을 갈망하는 유전자를 가진 소수의 무모하고 용감한 사람 덕이 아닐까 싶다.

평생 한 우물을 파며 하나의 직업에 우직하게 자신을 내어주어 충실하나 어떤 면에서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삶을 살고 마는 자도 있고, 단조로운 삶을 견디지 못하거나 주변의 환경 탓에 험난하고도 역동적인 삶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미 고령화 저출산이 일상화되어 환갑생일상을 받는 인구가 첫돌생일상을 받는 인구의 두 배인 나라가 돼버렸고, 평생직장이나 우직한 외곬의 삶이 선망되던 시대는 이미 끝나버렸다. 퇴직 후의 이삼십 년 남은 삶을 생각하면 누구든 인생 이모작이든 삼모작이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 것은 기후와 토양 등 환경 조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외부조건이 갖춰졌다고 해서 무조건 다모작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당사자의 근면성과 의지가 없으면 어떠한 조건에서도 다모작은 불가능하다.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자원과 기후가 좋은 곳에 사는 민족이 오히려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대충 살아도 굶지는 않으니 환경을 믿고 사람들이 게을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든 자의 무기력함은 왕왕 현자의 지혜로 오해받고 있지만, 지금 시대에 중요한 것은 나이를 넘어서는 역동적인 열정이 아닐까 싶다. 친구의 열정 넘친 삶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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