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엊그제 진천군 광혜원면에서는 독립 북소리를 시작으로 4.3 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올해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다. 100년 전, 우리는 일제로부터 어떻게 이 땅을 지키려 노력 했었나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특히 광혜원고등학교 학생들이 거리 퍼포먼스를 펼치며 지역 어른들과 함께 적극 참여하여 흐뭇함을 주었다.

그동안은 3.1절 행사를 안했다. 그냥 노는 날이었다. 삼일절을 안다고 해야 ‘유관순 누가가 독립만세 부른 날’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국사가 소홀해지면서 학생들에게 멀어져 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관심에서 멀어진 역사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방송매체에서도 연일 잊혀져간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며 그들의 생애를 짚어보고 있다. 유관순 열사만을 꼽던 여성 독립운동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충청북도에서는 미래여성프라자 1층에 충북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위한 전시실을 마련하고 흉상도 세워놓을 계획을 세웠다. 박재복(영동), 신순호(청주) 어윤희(충주), 오건해(청주), 윤희순(충주), 이국영(청주), 임수명(진천)선생을 대상으로 꼽고 있다.

이들 중 임수명(1894~1924)은 진천 출신 독립운동가 신팔균의 아내다. 그녀는 간호사였다. 1912년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환자를 가장하여 입원해 있는 신팔균 선생과 병원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환자와 간호사로서, 내심으로는 독립운동을 교류하는 동지가 되어 1914년 결혼을 한다. 독립운동이 부부의 연을 맺어준 셈이다. 그들 부부는 국내외적으로 독립운동 활동을 하면서 죽음까지 함께 한 영원한 동지요 운명공동체였다.

남편인 신팔균(1882~1924)선생은 진천군 이월 출신이다. 전통적인 무반 가문으로 조부인 신잡 선생, 신립 장군의 후예다. 1900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하여 구한말 궁궐 시위대에서 근무하였다. 군대 강제 해산 뒤에는 항일 구국군을 조직, 의병대장으로,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만주와 북경, 상해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남편 신팔균 선생의 독립운동을 돕는 한편, 만주에서 군자금 모금, 독립군 후원, 비밀 연락책 등의 역할을 당당히 수행해 왔다.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던 그녀는 남편이 전장에서 순국할 당시, 만삭의 몸이었다. 동지들은 차마 남편의 전사소식을 알리지 못한 채, 부인을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조국에 돌아와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그녀는 결국 유복자인 간난 딸과 함께 서른 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현재 국립 서울현충원에 부부 합장돼 있다. 정부는 신팔균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아내 임수명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나라의 구국운동에는 늘 여성의 힘이 적지 않게 작용했음에도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 사회구조상 내조라는 이름으로 묻혔기 때문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뒤에는 강인한 어머니가 있었고, 고통을 안고 집안을 꾸려간 아내가 직·간접적으로 뛰고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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