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연구사

 

[이선영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연구사] "승배야, 어디 가니?", "삽질하러 가요." 우리나라에서'삽질'이란 말은 원래의 사전적 의미보다 쓸데없는 행위를 일컫는 상징어에 가깝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수고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개념 없는 짓에 매진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비아냥의 뜻도 담고 있다. 초등학생의 대답으로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 이 녀석은 전통 먹 재료인 소나무 그을음을 모으기 위해 토굴을 만들러 가는 중이었다.

그 해 동아리 활동의 큰 주제는 인쇄과학이었다. 아이들의 방과후는 일단 과학실에 들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전통인주와 유성잉크의 색바램 정도를 비교해 보기 위해 90일이 넘도록 빛에 의한 색변화를 관찰하고자 같은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전통 인주의 주재료인 어린 쑥을 뜯고 말리고 빻느라 손끝에 피가 맺히기도 하고, 일주일이 걸려 완성된 토굴이 장맛비에 무너져 내리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답과 마주하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삽질의 미학은 이어짐에 있다. 백번을 반죽해도 겉돌기만 하던 인주 반죽과 아주까리기름이 백한 번째부터는 찰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삽질을 경험하지만 이는 곧 내가 가야할 길로 인도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체득한다.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과학적 탐구라고 명명한다면 그 바탕에는 엉킨 매듭을 풀고자 넓고 깊게 답에 접근중인 의미 있는 삽질의 과정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 동안 뒤바뀌지 않은 과학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줄 공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법칙과는 달리, 그 과정은 끝없는 시행착오, 실패의 연속,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 작업의 반복을 통해 조금씩 실질적인 가치가 더해져 왔다. 삽질의 순간들이 모여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래사회의 답은 과학이다.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태도가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4월은 과학의 달이다. 일본의 24번째 노벨상수상자인 혼조 교수는"내 머리로 생각해서 납득이 갈 때 까지 연구했다."고 수상 수감을 밝혔다. 늦은 밤, 밝게 켜진 학교 과학실 불빛을 보며, 삽질정신으로 무장하고 실험의 재미에 빠져 될 때까지 덕질하고 있을 우리 아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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