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기고
제천을 그리다신경철 제천교육지원청 장학사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4.11  16:42:29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기고] 신경철 제천교육지원청 장학사

제천은 고개도시다. 초등학교 시절 사회수업 시간에 제천 분지라는 말 때문에 헷갈렸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평평한 곳이 분지라니, 뭔가 확인하기 좋아하는 성격에 학교를 오가면서 나름 관찰해보니 왠지 분지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따라 이웃도시인 충주의료원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 분지가 이해됐다. 눈으로 본 충주는 최소한 땅이 평평했다. 반면 제천은 굴곡졌다.

북고남저의 지형이 주는 비행감, 동서로 이어지는 고개들이 주는 역동감은 제천을 제천답게 한다. 굳이 칠성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제천은 시내에 작은 동산과 고개가 연이어 있는, 시내 자체가 고개로 이루어진 도시다. 그런데 점점이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아파트단지가 늘어나면서 제천의 얼굴은 좀 밋밋해졌다.

소풍은 의림지다. 지겹다고 하면서도 달리 갈 데가 없었고, 다른 데를 가면 의림지가 그리웠다. 사실 의림지만한 곳이 없다. 둥그런 연못과 오솔길, 활터와 용추폭포, 제2의림지로 이어지는 솔밭공원의 소나무들, 그리고 잘 조성해놓은 산책길들은 제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한 폭의 풍경화다.

그 시절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의림지하면 연못과 제2의림지, 솔밭공원, 용두산과 피재골 어림까지를 다 합쳐서 그렇게 부른다. 그 너머서야 피재골이고 용두산이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이 그림에 다른 것들이 들어와 앉았다. 그래 조그마한 놀이동산이야 있을 수 있지, 그림을 풍미있게 하는 카페도 있을 수 있잖아?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서, 또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마음 한 편이 불편해진다.

작년에 준공한 역사박물관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조성해 놓은 분들이야 어렵게 예산을 만들어 공을 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림지를 마음에 그려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왠지 풍경화에 들어오면 안 될 것 같은 것이다. 대리석과 그늘 없는 돌바닥들은 눈을 부시게 하고, 그 눈부심은 왠지 그곳에 다가서기 어렵게 한다. 차라리 소나무를 더 심어서 제2솔밭공원을 조성해 놓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그들은 시민들이 의림지를 찾는 이유가 어떤 그리움 때문인지 알고 있을까? 분명 의림지의 물과 소나무와 바람 때문이지, 돌과 대리석과 소음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뜰 청전. 의림지를 지나 1시간 정도 걸어 용두산 정상에 올라서 보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청전뜰이다.(우리는 늘 청전뜰이라 불렀다.) 제천이 분지라는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곳. 그렇기에 요철로 된 시내를 벗어나 의림지를 가려다가 만나는 청전뜰은 마음을 한없이 푸근하게 한다. 전국 어느 도시에 이런 아름다운 농지가 있을까? 우리는 의림지로 소풍갈 때 이 아름다운 농지의 쭉 뻗은 농로를 걸었다. 그때는 떠들고 장난치느라 뜰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청전뜰은 어느덧 제천풍경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도 차츰 조성사업을 하고 한다. 길을 만들고, 뭔가를 꾸며 놓고, 꾸며 놓은 그곳을 무엇이라고 하고…… 상가와 주택들이 야금야금 뜰을 먹어치우고 있다. 왜 꼭 무언가를 조성해야만 하는지. 그냥 둬도 정말 아름다운 벌판인데 말이다. 사람이 꼭 뭔가를 만들고 그려야 아름답다고 하는 생각은 얼마든지 인간의 착각이다.

얼마 전 새해가 되면서 사무실 집기 배치가 보기 싫어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한참을 땀내며 컴퓨터, 전화선까지 다시 꽂고 보니, 다시 원상태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누구나 내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 그런데 그때 그 아름다움의 원형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손상해선 안 된다.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 온 원형을 해치는 순간 어떤 노력이라도 상당수 물거품이 되는 경험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해 왔다.

무엇을 그린다는 것은 우선 그것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다. 잘 알아서 친숙한 그것을 떠올릴 때 우리는 그린다고 한다. 제천의 청사진은 제천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그림으로 있다. 그래서 제천을 그리려는 사람이 공무원이든 민간인이든 누구이건 간에, 부디 제천이 가진 오롯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게, 제천 사람의 그리움이 상처받지 않게,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비주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