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내일을 열며]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사회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보며, 장관들의 청문회에서 드러나는 온갖 부정과 부조리, 부패와 불륜들을 보며 세계에서 이 모든 것이 교육의 부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랫동안 지녀온 위대한 전통들이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만큼 과거 교육의 전통으로부터 단절된 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선인들이 오랫동안 교육의 참된 목표로 삼았던 '감정의 조절'과 '도덕력의 신장(四端七情論)'이 오늘의 교육에서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고, '명상'이나 '사제 간의 도', '인륜' 등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신생국의 졸부처럼 아니면 망한 집안의 후손들처럼 온갖 좋다는 외국의 이론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모든 좋은 것은 밖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우리가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는 "진리는 진리로서 추구되내 것이 아니라 선으로써 추구된다."고 하였다. 선과 동떨어져서 추구되는 지식은 깊이가 없고, 거기서 낱개로 얻어진 정보들로 얻어진 지식은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삶에서 실천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여 행하고 있는 교육이 낱낱의 표피적인 정보를 얻을 뿐 참된 인간적 사고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중용(中庸)에 '하늘의 명(命) 그 자체가 곧 우리의 본성이요, 본성에 따름을 도(道)라 하고, 도를 마름한 것을 교육'이라고 했다. 우리의 교육에는 인간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우리 교육은 그동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과 탐구에는 소홀하였다. 인간이 무엇으로 행복하게 되는지, 무엇이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며 또 비참하게 하는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질문들을 하지 않아 왔다.

프롬(Erich P. Fromm)의 설명처럼 인간의 내부에는 두 가지 성향이 있다. 하나는 소유하고자 하는 생물학적 욕망에서 뻗어 나온 힘이다. 다른 하나는 존재하고자 하는 성향으로, 나누고 베풀고 희생하는 인간실존 특유의 조건이다. 소유가 나의 존재라면 소유를 잃을까 조바심하며 더 많이 소유하고자 가혹해진다. 그러나 실존적 존재에는 가진 것을 잃는다는 불안과 걱정이 없다. 존재하는 나의 중심은 자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선에 대한 관심이 일깨워지지 않은 곳에서는 진리에 대한 관심도 지며되기 어렵다. 오늘 우리의 교육현장에는 선에 대한 어떠한 추구도 가르쳐지지 않는다. 실리주의와 도구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의 교육에서 위대한 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인간교육은 어렵다.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 내 것과 네 것만을 무섭게 따지고, 자기감정 안의 것만을 중히 여긴다. 오늘의 교육이 목표나 방법이나 기초적 원리를 찾아내는데 있어서 전통을 다시 돌아보고 그 전통으로부터 배우는 일은 우리교육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하나의 좋은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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