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어둠이 내린 무심천변에 봄비가 내린다. 지난 주말 절정을 이룬 벚꽃으로 걷기도 힘들게 붐볐던 인파는 간곳없고 비 내리는 무심천변의 벚꽃길은 어둠에 잠겨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아직 남아있는 꽃잎과 이제 돋아나는 작은 이파리가 섞여, 일 년 중 겨우 일주일 남짓한 벚꽃의 짧은 절정이 이제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려했던 날들은 이제 꿈처럼 지나가고 있다. 빗방울을 흩뿌리며 부는 바람에 떨어진 꽃잎들이, 철 늦은 눈처럼 가로등 불빛 아래 이리저리 흩어진다.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꽃잎이나 아직 매달려는 있지만 이제 끝나는 날이 머지않은 꽃이나 그 처지는 별 차이가 없다.

햇살 아래 화사하게 피어나는 벚꽃도 눈부시지만, 밤 가로등 불빛 아래 창백하게 흔들리는 꽃잎은 더 마음이 간다. 불빛 아래 요염하게 빛나며 남아 있는 꽃들은 홍등가 등불 아래 창백해 보이던, 떠날 기회를 놓치고 나이 들어버린 작부의 진한 화장처럼 애처롭다. 이제 머지않아 벚나무는 파랗게 돋아난 새잎으로 뒤덮일 것이고 꽃잎으로 눈부셨던 이 짧은 봄밤은 아마도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볼을 간질이며 무심하게 지나가는 봄바람 속에 꽃과 함께 있는 정지된듯한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속절없이 빠르게 사라져 버린 정지된 기억의 집합으로만 남을 것이다. 우리가 남긴 사진첩 속의 단편적 기억이 우리의 지난날로 기억되는 것처럼 삶은 그저 조각난 기억들의 집합일 뿐이다.

봄꽃은 겨우내 움츠려있던 가슴을 들뜨게 한다. 그중에서도 한꺼번에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은 대표적인 봄꽃이다. 계절은 쉼 없어 반복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벚꽃은 다시 피고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아쉬움을 반복한다. 하지만 매해 느끼는 감정은 같을 수 없다. 꽃그늘 아래 친구나 연인과 휴대폰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며 설렘과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다.

어쩌면 삶에서 짜고 또 짜내봐야 몇 줌 되지 않을 행복을 SNS에 올리며 삶을 포장하고 그저 돋보이고 싶은 소박한 욕망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도 있고, 이제는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늙은 부모를 모시고 나온 이들도 있다. 벌써 수십번째 봄날의 꽃놀이에 동참했지만, 덧없이 사라져가는 봄꽃은 늘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한다. 몇 번의 계절이 더 돌아오고 다시 벚꽃을 볼 것인가 하는 뜬금없는 회한도 있다.

밀려왔던 인파가 사라지듯 눈부시게 화려했던 꽃잎도 속절없이 사라지고 봄도 지나간다. 그리고 계절은 바뀌고 또 다른 봄에 벚꽃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봄과 그 꽃도 이 밤의 이 꽃은 아닐 것이다.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어 다시 계절은 오지만, 세상에 같은 봄은 없다.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평범해 보이는 사연들이, 그 당사자에게는 평생에 한 번이나 겪을듯한 특별한 일이듯이, 이 봄밤의 사라져가는 벚꽃도 다시는 그 꽃일 수 없을 듯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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