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충청시평]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20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되는 날이다.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나라 안팎에서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일제의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고 그것이 독립을 앞당긴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안중근과 윤봉길이다. 상하이 도심 외곽에 위치한 루쉰(魯迅) 공원, 그 시절 훙커우(虹口) 공원으로 불린 이곳은 1932년 4월 29일 도시락 폭탄을 터트린 윤봉길 의사 의거 장소로 한국과 중국 역사 속에 길이 남아 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25년의 삶을 오롯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치고 그해 12월 19일 일본에서 사형된 그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중국은 루쉰 공원 안에 그의 호를 딴 매헌(梅軒)전시관을 건립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관광객의 발길조차 뜸해 기념품 가게는 오래전 문을 닫았고 그와 관련된 영상만 공허하게 상영되고 있다. 그가 그 역사적 장소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서울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생겼고, 거기에 독립운동가로서의 의지를 보여 주는 그의 글씨가 걸려 있다. 그의 다른 글씨에서 집자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7자는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가니 뜻을 이루지 않고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죽을 각오로 의거를 결심하고 누이에게 부모를 부탁하면서 남긴 이 구절에는 그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

작품의 우열을 떠나 그의 투철한 애국정신을 담고 있기에 그 앞에 서면 숙연해지면서 '글씨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난다'는 의미인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값으로 매긴 일이 발생했다. 2015년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이 그 7자를 4억 6천만에 매입했음이 알려지면서 위작 시비에 휘말렸다. 바로 법정 분쟁이 이어졌고 2018년 11월 16일 광주지방법원은 전문가 3명의 감정을 근거로 하여 위작으로 판결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박·미술관을 건립하면서 유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지만 그 수는 한정되어 있으니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 자연 위작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것이 미술시장의 현주소다. 안중근 의사의 일부 글씨에 위작 시비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을 추진하는 행정 공무원들은 전문성이 없으니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소장품 매입 시 전문가를 통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 사건이다.

전국의 박·미술관 소장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서화지만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다. 서화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데 진로가 밝지 못해 차세대가 양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소장품 구입은 충분한 사전 검토와 실력이 검증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자칫 서두르게 되면 세금 낭비뿐만 아니라 지루한 법정 공방을 이어 가게 된다. 그러는 사이 서화는 감상의 대상에서 피로를 유발하는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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