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노트르담이 불탔다. 15일 발생한 화재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목조 첨탑과 지붕이 소실되었다. 파리 시민들은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마크롱 대통령이"매우 슬프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말한 것처럼 프랑스의 문화적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다. 프랑스 언론들은 첨탑 보수공사를 위해 설치한 비계의 상부 쪽에서 불길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성당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무로 비계를 설치했는데 그로 인해 화재가 더 커졌다고 한다. 이처럼 문화유산은 의도치 않게 위험에 노출된다.

불길 속의 노트르담을 보며 사람들은 2008년 2월 10일 발생한 국보 1호 숭례문 화재를 떠올렸다. 얼마 전 강원도 속초 고성 지역에 산불이 났을 때엔 2005년 4월 산불로 폐허가 된 양양 낙산사를 되새겨야 했다. 당시 원통보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보물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銅鐘)이 불에 녹아 내렸다.

야외 목조문화재는 화재 앞에 한없이 취약하다. 1984년 전남 화순의 보물 163호 쌍봉사 대웅전에 불이 나 건물이 모두 사라졌다.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국내에 두 개뿐인 조선시대 목탑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웠다. 숭례문 화재의 경우처럼 방화(放火)도 심각하다. 1986년엔 불교에 거부감을 가진 한 광신도가 전북 김제 금산사에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대장전 내부에 봉안되어 있던 탱화와 불상 등이 모두 소실되었다. 2006년 4월엔 한 남성이 창경궁의 문정전에 불을 질러 문 일부를 태웠다. 그 해 5월엔 세상에 불만을 품은 한 청년 취객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서장대에 불을 질렀다.

화재는 문화재 바로 옆에 있다. 그렇기에 예방이 중요하다. 문화재 방재에 관해선 일본이 모범적이다. 일본 다카야마(高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라카와고(白川鄕) 마을. 이곳엔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하는 일본 전통주택이 모여 있다. 건물 하나하나도 독특하지만 눈 내린 마을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시라카와고의 소방 시스템이다. 문화재 건물 하나하나 주변으로 돌아가며 스프링쿨러를 설치해 놓았고 불이 나면 거기서 벽체와 지붕으로 일제히 물을 뿜어 올린다. 그 모습이 장관이어서 이것이 시라카와고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완벽한 소방 시스템이 문화재도 지키고 관광객도 끌어 모은다.

일본은 1949년 나라(奈良) 호류지(法隆寺)의 대화재 이후 목조문화재 방재에 만전을 기해왔다.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나라와 같은 고도(古都)의 목탑을 보면 그 주변으로 빙 둘러 소화전을 설치해 놓았다. 고찰(古刹)에 가면 처마 밑으로 양동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불을 끄는 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두고"첨단 소방차가 끄면 될 일이지 양동이 몇 개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가짐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한 양동이의 물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 시라카와고의 소방 시스템은 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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