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누구일까? 내 마음을 이토록 설레게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출근을 하고 업무 준비를 하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 콩당콩당 거린다. 얼마만일까, 알 수 없는 이 묘한 감정이 마음을 온통 뒤흔든다. 메모지 한 장이라도 남기면 좋았을 것을 내 마음을 사기위한 작전일까, 아니면 이름을 밝히기에는 부끄러운 거였을까! 혹시 고단수 사랑꾼의 치밀한 수법은 아닌지, 그렇지만 싫지는 않은 이 기분은 뭘까! 누군가 나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아무도 몰래 혼자서 나를 흠모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책상 앞에 앉으니 거울 속에 내 얼굴은 동백꽃 같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출근해서 사무실 출입문 번호 키를 누르려는데 문고리에 종이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었지만 보낸 사람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고급스럽고 품격 있게 포장된 박스의 리본 매듭을 조심스럽게 풀어갔다. 꽁꽁 동여 메고 살던 내 마음의 빗장을 풀듯이 조심조심 풀었다. 초콜렛이다. 보기에도 달콤한 초콜렛이 들어있었다. 정성이 묻어나는 포장이며 내용물이 보낸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마음이 달콤한 초콜렛 만큼이나 감사하게 느껴져 왔다.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누구일까? 나이든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뒤흔들어 놓다니...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초콜렛을 한조각도 선뜻 먹을 수가 없었다. 맛있어 보이는 초콜렛은 마음속에서만 사르르 달콤하게 녹고 있었다. 먹고 싶은 유혹이 사뭇 있었지만 어느 누구의 어떤 감정일지도 모르는 그 마음을 그리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고 자책을 하면서 달콤한 인내를 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초콜렛의 장본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를 쫑긋했다. 업무적인 전화만 하루종일 걸려올 뿐이었다. 환갑이 넘은 나에게 연정을 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슬슬 기분이 좋아 지기 시작했다. 나를 노인 취급을 하는 아들에게 자랑이 하고 싶어졌다.

핸드폰으로 초콜렛 사진을 찍어서 아들에게 전송을 했다. 의기양양해 하면서 누구인지 궁금해서 답답하다고 하소연까지 했다. 아들이 박장 대소를 한다. 순간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들 왈 이른 아침 출근길에 걸어 두고 갔다고 고백을 한다. 이틀 후에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렛을 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화이트데이라고 했다. 주말부부인 아들이 초콜렛 세 개를 준비해서 며느리와 장모님과 나에게 미리 전하고 갔다고 한다. 아들은 실망시켜줘서 죄송하다며 짓궂은 사과를 한다. 멈추지 않는 아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봄날의 꿈은 이렇듯 허무하게 끝이 났다. 아들의 웃음을 떠올리면서 그제서야 초콜렛을 입에 넣었다. 사르르 입안에서 녹아드는 그 달콤함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렛이 아닐까! 아들의 다정다감함이 온 몸으로 녹아든다. 한나절의 꿈은 참으로 달콤하고 행복했다. 아들에게 문자를 날렸다. "아들! 꿈에서 깨어나게 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아들의 웃음소리가 오랫동안 귓전에 머물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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