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아래지방에서부터 꽃소식은 전해져오고 삶터까지 화사해져 간다. 그렇더라도 좀처럼 일터를 비울 수 없는 내게 봄은 차라리 곤욕스러운 일이다. 상춘객들의 소식은 TV에서 연일 전해지고 여행 중인 친구들이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SNS를 통해 울려오면 얼떨결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아름다운 선물 임에도 맘껏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때마침 큰아이가 휴가를 나왔다. 이런 좋은 핑계가 있을까. 남편과 함께 보양식으로 기운을 돋우고 금강변을 걸었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는 벚 꽃길이다. 하늘은 산책하기에 좋은 배경이 되어준다. 바람은 한결 보드라워졌다. 마음까지 녹아 내려주는 온기가 걸음마다 나폴 댄다. 한나절의 호사이지만 두어 달 만에 손을 잡아보는 아들 덕분이지 싶다.

며칠 상간으로 고향친구들이 업장으로 들어선다. 선하며 유쾌함이 닮은 그들에게 큰 맘 먹고 한정식을 대접 했다. 정갈한 음식들이 차례를 지키며 상에 오를 적마다 빛깔과 향기며 맛을 앞 다투어 평가한다. 열 살짜리 계집아이들처럼 웃어대다가도 사진을 찍을 땐 진지한 모습이 더 우스워 박장대소한다. 정작 음식을 제대로 먹은 것인가 싶은데 접시는 비워져있다. 자리를 옮겨 미호천의 벚꽃 길을 안내했다.

사업하는 남편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공통분모를 갖은 우리들의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고 함께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와준 고마움은 무엇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은 선물이다.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오늘의 만남으로 더 견고하게 성을 쌓아간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뒤돌아 손 흔들어 주길 기다린다. 아련한 수채화 한 폭이다.

잠시 휴게실에 올라 왔는데 단골손님이 선물을 갖고 왔다는 연락이다. 내가 매장에 매여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며 취미로 만든 것을 주고 갈 터이니 한 번씩 들여다보란다. 십자수를 곱게 수놓은 손수건이면 하는 기대감에 쉬는 둥 마는 둥하다가 매장으로 내려왔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앨범이다. 겉장을 넘겨보니 교회에 관한 스크랩북이다. 잡지나 신문을 삐뚤빼뚤 오려 넣은 것이 영락없는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숙제로 보인다. 내게 왜 이런 것을 주었을까. 서운함을 넘어 언짢기까지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장애가 있는 그가 가위로 오려내는 것은 일반인과 달리 고난위도의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지 싶다. 나는 누구에게 이런 정성을 다하여 보았는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4월의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추위를 타는 관계로 아직 내의를 벗지 못했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동창생들의 모임을 알리는 메시지는 휴일이 없다. 의기소침한 채 나는 평형대에 올라선 듯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아직은 가족과 일터가 우선임을 알고 있기에 애써 외면한다. 이런 나에게 그리운 이들이 찾아왔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일상에서의 봄을 만끽했다. 내 삶에 뿌리가 되어주는 모든 것에도 봄이 오고 마침내 꽃이 피어나리라. 진정 신이 주시는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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