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세상을 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4월을 뜻하는 April에 대한 어원은 확실치 않지만 초목의 싹이 돋는 달이라서 Aperire(열리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사랑을 노래하는 계절이라 하여 미와 사랑의 여신인 Aphrodite의 머리글자 Aphro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팻 분(Pat Boone)이 노래한 April Love에서는 청춘을 위한 사랑의 달로 묘사했고, 초록 물감이 곱게 드리워진 산하(山河)에 지저귀는 새소리, 시냇물 소리, 온갖 화초의 너울거림이 그저 아름답다.

4월은 겨울의 끝이요 달콤한 봄의 시작이다. 4월, 신록(新綠)이라는 단어만으로 가슴이 뛰고 마음에 파도가 울렁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4월은 더 이상 달콤하지도, 눈부시지도, 아름답지도, 동토의 찬바람을 이겨낸 따스함도 숨을 멎게 만드는 찬란함도 없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가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에 그저 먹먹함만을 띄워 보내는 회한(恨)과 비통으로 얼룩진 4월이다.

어머니는 60대에 마흔 중반의 자식을 먼저 보냈다. 재판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의료과실이 원인이었다. 어머니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만 뜨면 눈물을 흘리셨고 안약을 달고 사는 세월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그런 어머니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망의 눈길이 되었다. 집안에 즐거운 일이 있어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없고, 무엇을 해도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채 몇 년이 흘렀다. 망각은 차라리 축복이라고 했던가. 가족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어머니에게 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구순(九旬)이 넘은 오늘도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슬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생이던 딸이 결혼을 하고, 손주가 태어나도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슬픔은, 아쉬움은, 그리움은 상처로 남아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살아왔어도 어머니가 느끼는 슬픔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오늘도 퉁퉁 부은 눈으로 어머니는 종이에 불경을 필사하시며 먼저 간 자식의 명복을 기도한다.

세월호 유가족 중 한 분에게 가장 힘들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봤다. '빨리 잊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정치권을 시작으로 아직도 세월호를 팔아먹느냐는 말들이 난무한다. 그들에게 세월호에 대해 온전히 밝혀진 것이 있는지는 상관없다. 진실도 상관없는 듯하다. 다만 그런 말을 듣는 범부에게는 그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외침으로 들릴 뿐이다.

고2, 16살 혹은 17살이었던 꿈 많은 소년 소녀들이 소풍을 간다고 들떠서 집을 나간 후에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눈앞에 구할 수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었음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 놓고 있던 당시 정부는 그저 남 탓하기에 바빴다.

2014년 당시에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권력자들 한 사람도 내 탓이라고 말하는 자가 없다. 오히려 온갖 핑계를 통해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고 버티던 박근혜정부는 촛불혁명이라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대통령직을 파면당하는 수모를 겪고 나서야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세월호는 바다 밖으로 올라 올 수 있었다.

돌아가신 후에 시신조차 가족의 품에 수습을 해드리지 못한 다섯 분을 포함해 삼백네 분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잔인하기만 한 4월을 당리당략을 위해 내뱉는 말이라 해도 이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의 발버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이어서 더 서럽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가슴은 그래서 또 멍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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