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솔직히 영어권 나라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해외 여행할 때는 그 부러움이 두 배다. 네팔 히말라야 롯지에서도 영어로 소통을 하니 말이다. 우리나라 트레커들과 비영어권 트레커들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네팔리라고 불리는 네팔인들과도 영어로 대부분 소통한다. 자국 언어 네팔말로는 '레쌈삐리리'라는 민요를 읊는데 만 쓸 정도다.

국회 출입기자로 근무할 당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알제리 고위 관료들과 국제회의를 한 경험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공용어는 영어였다. 그 나라 관료들은 프랑스어나 그 나라 말을 사용하고 이를 그 나라 통역사가 영어로 이야기 하면, 우리나라 영어 통역사가 우리말로 이를 옮겨주는 형식. 회의를 지켜보면서 '영어로 직접 대화하면 더 소통이 잘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말이란 한 단계 건너가면 그 의미가 더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언어는 단순히 소통하는데 만 사용되지 않는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다. 지인 중에 대만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 대만 여성이 있었는데, 한국에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일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둘은 평소에 영어로 대화를 하고, 부부싸움이 있을 때는 한국말로 싸운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모국어를 쓰지 않는 이유가 상당히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짐작컨대, 각자 모국어를 쓸 경우 문화차이 때문에 소통이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서로 다른 언어로 각자 말하면 전혀 소통이 안 되지만, 같은 언어로 서툴게 이야기 하면 소통이 된다는 논리다.

우리말인 한글을 전 세계 사람이 쓴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 문화를 쓰고, 사용하는 것과 같다. 우리말과 글이 세계 공용어가 된다면, 우리는 따로 말과 글을 배울 수고가 덜어지니 얼마나 좋겠는가. 거기다가, 우리말과 글을 쓰게 되면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기 때문에 호감도가 일단 급상승한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 그렇게 되기 어려울 듯싶다.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 인기 덕분에 우리말과 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한 모임에서 영어를 포함한 언어에 대한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모임에 참석했던 지인들의 목소리는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모아진다. 영어권 나라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이야기 했는데, 중국어도 배워야 하다니!! 한자는 서양으로 치면 라틴어라는 것. 동양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한자를 배워야 하고, 그 한자 문명을 바탕으로 한 동양 사상을 제대로 이해해야 정치, 경제 , 문화적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무역국가다. 무역국가 입장에선 주변 주요 국가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는 게 필수적이다. 우리말도 자랑스럽지만, 여러 나라 말을 배워서 우리말을 그 나라 말로 번역해 주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 문화국가로서 출발점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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