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진영칼럼] 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눈물이 찔끔 났다. 15년 된 승용차를 폐차했다. 단 한 통의 전화에 득달같이 달려온 기사가 차량등록증과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끌고 가 버렸다. 50만 원이란다. 그것도 손에 쥐여주는 게 아니라 은행 계좌로 보낸단다.

나에게 이 자동차와 함께한 15년은 꽤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교감으로 승진 발령이 나서 이 차를 몰고 간 때였다. 물론 그때까지도 자동차는 있었다. 초기에는 값싼 승용차를 중고로 사서 운전을 익혔고 그다음엔 장거리 출퇴근용으로 LPG 승합차를 타다가 아들의 대학 입학 기념으로 주고는 이 차로 갱신을 한 것이다. 장학사로 전직하여 충북 도내 곳곳을 출장 다닐 때도 이 차를 이용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후 승진하여 여기저기에서 근무할 때는 아예 카페 삼아 즐기며 운전을 했으니 퇴직할 때까지 이 차는 분신과 같았다.

처음에는 차에 티끌이라도 묻을세라 닦고 또 닦았다. 경유차 이후의 쾌적한 휘발유 차의 승차감을 즐기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15년에 23만Km!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해 주었고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해 주었다. 심심하다고 노래를 틀어주고 궁금하다고 새 소식을 전해 주었다. 영어 회화 공부도 시켜 주었고 클래식 음악으로 우아하게 폼을 잡아주었다. 따가운 햇빛이라도 들이치면 얼른 가림막으로 얼굴을 가려 주었고 위험할 때는 급하게 걸음을 멈추었다.

앞차를 추월할 때는 깜빡이로 신호를 보내주었고 뒤차가 얼마큼 따라오나 거울도 비춰주었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으면 얼른 알아채고 고속도로에서 마음껏 질주하여 위로해 주었으며 경사로를 거침없이 오르고 내리막을 겁도 없이 달렸다. 모르는 길을 척척박사처럼 알려주었으며 심지어는 차 내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두 기억해 주어 주차한 이후에도 마음을 놓게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와 동고동락했던 그가 갔다. 낯선 젊은이의 손에 이끌려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끌려갔다. 모퉁이를 돌 때 슬픈 양 눈을 한 번 껌뻑이고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아직 더 탈만한 차였다. 갑자기 새 차가 생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하나를 처분해야했기에 행한 처사였는데 나의 사연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나도 나중에 그렇게 될 것이다. 더 나이를 먹어 쓸모가 없어지면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낯선 이의 손에 딸려 보낼 것이다. 그동안 여기저기 다니느라 수고했다는 작은 덕담이나마 나눠 줄는지 모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스스로 용을 써도 개의치 않고 그렇게 될 것이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찬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확 끼얹어졌다. 사람이야 차와는 달리 어느 곳으로 가게 될는지 알고 있다는 믿음으로 위안이 되긴 했으나 돌아서는 발걸음이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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