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위기의 환경

세계 최강국 미국에 불어 닥친 이번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 중에 하나가 인간의 탐욕이라는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빚을 내서라도 돈을 벌고자 하는 각 개인들의 욕심이 집합적으로 표출되다 보니 그것은 엄청난 부정적 힘으로 변해 결국에는 금융시스템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다른 원인 중에 하나는 경영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윤리경영 의식의 실종이다. 주주의 부를 확대시켜 줘야 하는 시장주의적 책임의식은 경영자들에게 늘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가를 끌어올리려다보니 윤리경영은 뒷전이 됐다.

일반 소비자나 경영자를 막론하고 각 개인의 자기만족 극대화를 위한 욕심이 국가적 위기까지 불러올 정도라면, 거기에는 분명히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 환경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그토록 탐욕적이 되도록 만들었을까? 그 첫 번째 원인은 글로벌 이후 세계에 몰아닥친 극한 경쟁구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시장주의 제도와 그것이 옳다고 믿는 신념, 그것들이 혼합된 문화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발 경제위기를 통해 새삼 확인된 것은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극한 경쟁은 결국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의 탐욕은 환경이 덜 경쟁적일수록 억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자유경쟁체제가 가장 잘 발달된 미국에서 각종 조직이나 개인들은 규제 없는 경쟁 때문에 극심한 탐욕으로 치달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탐욕이 각 분야에서 부정행위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스탠포드대학의 세계적 경영학자인 제프리 페퍼 교수는 미국 대학생들이 심각한 시험 부정을 저지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어떤 대학의 학부에서는 전체 학생의 70%가 시험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조사됐다. 교수들은 부정행위를 적발해도 징계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한 상황에 휘말리기가 싫어서 대체로 묵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측도 방관으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극한경쟁은 대학생들이 학과목 내용을 공부하는데 흥미를 갖기보다는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따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그만이라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이런 풍조 역시 시장주의의 극한경쟁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서인지 미국인들 스스로도 이번 경제위기 책임의 일정부분을 소비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고, 인간의 탐욕을 공공선을 위해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반면, 우리는 계속 미국 흉내 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 대한 무한경쟁체제의 도입, 일부 서울권 대학들의 공교육 무력화 입시정책, 무한대의 특목고 설치 등 사회발전의 기반이 되는 교육부터 협력과 융화보다는 극한경쟁체제로 전환되다보니 부정행위도 증가하고 있다. 교사들이 불리한 평가를 두려워해 성적을 조작하는가하면, 학업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시험에서 제외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행위는 지속적이면서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들도 마찬가지이다.

몇몇 잘나가는 대학들이 앞장서서 일반인이 알 수 없는 학생 선발방법을 만들어 놓고 일반적이고 객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탈락시키는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극한경쟁구조 속에서 정상적인 것들과 휴머니즘은 갈수록 설 땅을 잃고 있다. 강자들만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게 만드는 탐욕의 경쟁구조에 경종을 울릴 때가 됐다.

▲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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