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스무 살이 넘고서는 늘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삼십 대 후반을 같이했던 옛 직장동료들과 여행을 떠났다. 어이없지만 삼십 대 때도 우리는 너무 나이가 들어 이제 뭘 새로 할 수 있겠냐며 지나간 청춘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퇴직할 나이들이 돼서야 조금이라도 젊을 때 떠나야 한다며 때때로 같이 모여 여행을 떠난다.

바다 없는 내륙에서만 살아서인지 홍도나 흑산도는, 마치 고갱이 머물렀다는 남태평양의 어떤 섬처럼 가늠도 되지 않는 먼 이국의 외딴섬처럼 느껴 왔었다. 겨우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로만 기억될 만큼이나 내 삶과 관계없던 한반도 남쪽 먼바다의 흑산도와 홍도를 1박 2일로 다녀왔다. 제주도 수학여행 때 밤새 기차를 타고서야 목포에 도착했던 기억이 있는데, 오송역에서 KTX로 겨우 1시간 40여 분 만에 목포에 도착했고, 다시 배로 2시간 반 만에 홍도에 도착했다.

석양에 섬 천체가 붉게 보여 홍도라 불린다는데 깃대봉에 올라 석양에 물든 섬을 조망하니 그 말이 실감 난다. 20km 남짓한 해안선 대부분이 바위와 절벽으로 이루어져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으나, 해안선이 가파르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이라 항구로나 농사짓기는 참으로 척박했을 것 같다. 세월이 변하니 어업이나 농업에 불리했던 자연환경은 관광자원이 되었다. 아마도 500여 명이 전부라는 섬 주민 대부분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삶을 이어갈 것 같다.

흑산도는 면 소재지가 있는 섬으로 홍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상록수로 이루어진 숲이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 해서 흑산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태풍 피난처 역할을 하는 천혜의 항구,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의 유배지라는 역사적 사실, 홍어의 산지, 그리고 50여 년 전 이미자가 불러 유명해졌던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 등의 이야기가 관광자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섬 일주하는 버스로 관광을 대신했는데, 먼 항구가 아스라이 보이는 성나리 고개에 올라 숨을 고른다. 언덕 위에 세워진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에서는 몇십 년째 불러대는 이미자의 애절한 가락이 귓전을 울린다. 육지를 그리다가 마음이 새까맣게 타버렸다는 그날의 섬마을 아가씨도 이제는 늙은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달래나 산나물 후박나무 껍질을 파는 노점의 삶에 지친 할머니도, 홍어삼합을 사달라는 호객꾼이 된 할머니도 그날의 흑산도 아가씨가 늙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목포역 근처의 백반집에서 주인장의 너스레를 곁들인 남도의 밥상으로 한 끼 해결하고 밤늦게 KTX에 몸을 싣는다. 현실을 팽개치고 떠날 수 있던 것은 인생의 남은 날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이고, 1박2일이 이리도 피곤한 것은 살아온 날 중에 오늘이 제일 늙은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날을 기준으로 하면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고 뒤를 기준으로 하면 오늘이 가장 늙은 날이니 어차피 삶은 해석의 문제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어차피 각자의 몫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