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근로자의 날로 시작되는 5월이 되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청소년의 달이며 부처님 오신 날, 유권자의 날 등 따로 이름을 가진 날이 10여 일이 넘는 달이기도 하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붉은 꽃망울을 보았다.

담장을 기대고 자라는 덩굴장미였는데 연녹색 잎들이 어느새 진해져 푸름을 더하고 있었다. 5월은 장미가 피는 계절이다. 특히 울타리를 너끈하게 올라타고 피어나는 덩굴장미는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칭송 듣게 하는 일등 공신이며 너무나 붉어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꽃이다.

그리스 신이 장미를 만들었을 때, 에로스 신 큐피드는 장미꽃을 보자마자 아름다움에 반해 키스하려고 입술을 내밀었단다. 그러자 꽃 속에 있던 벌이 튀어나와 큐피드의 입술을 쏘아 버렸다는데 어머니 비너스 여신은 벌을 잡아 침을 빼 장미 줄기에 꽂아 두었고 그것이 가시가 되었다고 한다.

장미를 지독하게 사랑하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알려진 시인이다. 가시 때문이 아니라 가시에 묻었던 파상풍균 때문이라는데 꽃과 꽃향기에 취하고 시와 일기와 편지마다 끊임없이 장미를 찬미하며 사랑을 나누다가 생을 마감했으니 여한이 없었을까?

5월은 세계의 역사에서 혁명과 변화가 교차한 달이라고 한다. 1886년 5월 1일에 미국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의 노동시간을 쟁취하기 나섰고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은 드골 정부의 몰락을 가져왔다. 우리나라의 5월도 아픈 역사가 많다. 1948년 5·10선거, 1961년 5·16 군사 정변은 어둠의 긴 터널로 들어서는 전초전이었고 80년 5월은 광주에서, 91년 5월은 서울에서 생떼 같은 목숨이 스러져 갔다.

새댁시절에 대학생을 자식으로 둔 어른과 이웃하고 살았었다. 그분은 TV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데모 대열에서 자식을 찾았다. 자식 본지도 오래되었고 연락도 두절이라 뉴스를 보며 마음이 졸이다가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하면 자식과 또래인 필자에게 조심스럽게 하소연을 하시곤 했다.

범국민 궐기대회가 대회가 열린다던 1991년 5월의 어느 토요일, 그 어른은 탁자에 있던 신문기사를 읽다 말고 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나더니 서울로 가야겠다고 훌쩍 일어서셨다. 걸핏하면 집으로 형사가 찾아오고 하던 사업도 핍박이 심해 그만두고 나서 더욱 자주 오시곤 했는데 더는 막연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항쟁의 거리로 자식을 찾아 나서고야 말았다.

5·18 민중항쟁이 곧 39주년을 맞는다. 꽃과 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장미가 피는 계절이 되어도 꽃은 보지 못하고 가시만이 가슴속을 마구 찔러 상처가 덧나고 말 것이다. 애정, 행복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간직하고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할 때나 결혼식장에서 부케로 쓰이는 으뜸 꽃인 장미가 피는 5월. 5월은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는 달이어야만 했다.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던 그분이 만약 살아계신다면 ‘헌법 수호,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저들을 보며 또 장미 가시에 찔리는 심정이시겠지! 봉하마을 부엉이바위도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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