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언론인 (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의 쓴소리 칼럼] 신수용 언론인 (대전일보 전 대표이사·발행인)

1996년 가을, 국회 뒷얘기가 듣고 싶어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을 찾았다. 그는 그 무렵 김영삼(YS)대통령으로부터 노동법인가를 날치기해서라도 통과시키라는 전갈을 받았다. 하지만 ‘여당의 원하는 의도처럼 하지 않겠다. 날치기는 없다’고 거부한 상태였다. 그는 동아일보 정치부기자 출신이다. 4.19 직전 이기붕 부통령후보에게 ‘사퇴할 용의가 없느냐’고 물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마산 앞바다에 떠있는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첫 보도한 기자다.

그 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일행이 춘천을 방문했을 때 소양강 유람선에 몰래 타 특종을 한 일화도 있다. 혁명 세력 주축만 승선한 유람선이 강의 한복판에서 박정희를 만났다. 한복판이니 내리라고 할 수 없어 함께 동행했다. 그때 박정희와 김종필 등의 말을 엿듣고 기사를 써서 3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향후 중앙정보부 신설한다는 얘기를 그대로 옮겨 쓴 것이다.

연세대 재학당시에는 ‘이 사람이 이만섭인가’할 만큼 털보였고, 응원 단장이었다. 호쾌하고, 남자답다고 소문난 인물이다. 청와대 출입기자 때 박정희를 곤란에 빠뜨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그러나 그의 강직한 성품과 됨됨이를 보고 영입해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그에게 ‘서울시청 길 건너에 있던 국회를 여의도로 왜 옮겼나요?’하자 그는 껄껄 웃는다. 그는 “그거, 다 이유가 있지. 여의도로 국회를 옮긴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 여의도 국회, ‘여당의 의도대로 하겠다’는 뜻 아닐까”하고 조크했다.

그는 “명분은 번듯한 국회의사당을 여의도에 짓겠다는 것이었어. 하나 알다시피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대중. 김영삼을 미워했거든. 당시 여당인 공화당이 김대중. 김영삼등의 신민당에 끌려다니까 청와대와 지척인 국회를 보기 싫다고 떼놓은 거지. ”라고 했다. 그는 “그러자 여당인 공화당 충성파 4인방은 박통을 찾아가 잘하셨습니다. 국회가 여의도로 가면 우리 여당의도대로 다 할 수 있다”고했다. 반면 야당은 “ 박정희 유신정권이 자신의 의도대로 하려고 여의도에 국회를 만드느냐”고 논평을 낼 정도였다.

그 뒤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두환...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후임 대통령의 대부분이 국회를 여당 의도대로 끌고 가려고 했다. 심지어 DJP정권이 탄생됐을 때는 선거에 공조한 자민련의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 총재를 국무총리를 맡겼다. 자민련은 국회에서 DJ정당과 결합해 행정부와 입법부의 묘한 관계를 만들었다. 물론 집권 여당의 의도대로 하기 위해 국회를 여의도로 옮긴 것은 아니다. 여의도(汝矣島)란 그런 뜻이 아니다. 여(汝)는 ‘너’, ‘의(矣)’는 뜻이 없는 어조사이며, 도(島)는 ‘섬’을 말한다. 순수 우리말로는 ‘너섬’이라고 부른다.

지난주까지 우리 여의도 국회는 정말 ‘여(與의도’인지, ‘야(野의도’인지 모를 만큼 살벌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한편이 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반대편이 되어 생사를 걸고 밤낮으로 싸웠다. 준연동형비례대표 제안과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법안, 검경수사권조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처리 때문이었다. 여당의도대로 강행하겠다는 쪽과 회의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야당의도로 몇날 며칠을 두고 강대강으로 충돌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여당이 원하는대로 사개특위위원 두사람을 바꿔 이를 처리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이 사보임을 병실에서 허락했다. 더한 것은 국회선진화법이 있는데도 회의자체를 자신의 뜻대로 무산시킨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결국 여당의도대로 패스트트랙은 처리됐다. 지난 25일부터 30일 새벽 이들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과정까지 이어진 ‘5박6일의 긴 전쟁’은 일단 폐장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일단락된 패스트트랙은 무효라며 장외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집단 고소·고발도 그것이다. 일부는 삭발로 대응하는 후폭풍은 여전하다.

이것으로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패스트트랙 정국을 기점으로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여야가 벌일 ‘총성 없는 전쟁’이 사실상 시작된 것이다. 여야 4당과 한국당과의 문제를 보는 시각은 너무 다른 까닭이다. ‘동물국회’가 이제야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는 여론 분석도 나온다. 국정도 올스톱 됐다. 7일까지가 회기인 4월 임시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안 등은 손도 못대고 있다. 다급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조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강원도 산불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소방기본법 개정안, 혁신성장을 뒷받침하는 빅데이터 3법 등 시간을 다투는 현안은 체증 상태다.

해외순방에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이 “추경의 조속한 통과와 신속한 집행”을 국회와 정부부처에 요청했다. 그렇지만 “20대 국회는 없다”를 외쳐온 한국당은 추경안 논의는 물론, 의사일정 전체를 보이콧한 상태다.  이 강대강 대치에도 민주당은 4 대 1 구도로 한국당을 고립시켰다는데 의미를 찾는 것 같다.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범진보연대의 합작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한국당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명박 전 대통령 형사처벌 이후 흩어진 보수층 결집의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한국당은 전국 순회 규탄대회 개최 등 전방위 투쟁을 결의한 상태다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게 팬 여야의 적대감이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선거제·개혁입법의 결실까지 진통은 계속될 게 뻔하다. 협치와 개혁·민생입법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지형의 변화도 꿈틀된다. 결론은 현재 ‘여야 4당 대(對) 한국당 1 대결’구도 지만, 임박해선 1대 1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정파간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으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이다. 특정정당을 해산시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기록적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화가 단단히 났다. 내년 총선을 앞당길 수 없느냐며 표로 심판하겠다는 시민도 적지 않다.

이제 적대정치는 끝내야 정치권이 상생한다. 여야 간의 사생결단식 대치와 80명씩 고소고발하는 일을 끝내라. 쉽지 않아도 갈등과 대립은 극복하는게 정치다. 극단적 대결정치로 빚어진 4월 국회처럼 빈손정치를 깨야한다. 정쟁에 매몰된 막장 정치를 보는 것도 한계에 있다. 당의 존립이 걸린 내년 총선이지만 민생 현안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하는 의회민주주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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