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오월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그 분은 바로 1983년 주성초등학교에 재직하셨던 김근세 교장선생님이다. 나와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가르치신 적은 더군다나 없다. 아침조회시간에 연단 위에서 ‘여덟 살이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뭔가 좋은 얘기를 해주시는 높은 분’이었던 선생님이 삼십년 넘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잊혀 지지 않는 한 장면 때문이다.

삼십 육년 전 어느 날,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던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단단한 돌에 솜씨 좋은 장인이 조각한 부조처럼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살짝 드리워진 커튼처럼 노을이 하늘에 펼쳐져 있고, 그 아래 뛰어노는 어린아이들 사이에 유일한 어른이셨던 선생님은 어두운 색 양복 차림에 낡은 슬리퍼를 신고 허리를 깊게 숙여 쓰레기를 줍고 계셨다. 나와 내 친구가 달려가 인사를 하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래.” 라고 짧게 대답하시고, 하던 일에 집중하셨다.

마치 본인의 일인 것처럼 열심히 하셨지만, 나는 신기한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팔년 밖에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나에게도 학교에서 제일 나이도 많아 보이고, 높은 분이 누군가에게 시키지 않고, 자신이 원래 하던 일인 것처럼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 낯설었던 것 같다. 교장선생님은 얼마 안 있어 퇴직을 하셨던 것으로 보아, 당시에 육십 세가 넘으셨지 않나 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생님 같은 어른보다 ‘대접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시키는 것이 더 익숙하고’, ‘고개 숙이지 않는’,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로 가르치려는’ 어른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난 듯하다. 지금껏 살아오며 나는 그런 적은 없는지 경계하는 마음이라도 갖는 것은 말이 아닌 몸소 실천하시는 교장선생님을 통해 ‘훌륭한 어른’에 대해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성리학자인 남명 조식(曺植) 선생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가르침으로 유명하며, 성리학뿐만 아니라 군사학,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조선 명종(明宗) 때 왕과 왕의 모친인 문정왕후(文定王后) 그리고 조정의 대신들을 비판하여 큰 파문이 일기도 했는데, 신하들이 나서 “초야에 묻힌 선비라 표현이 거칠다.”고 무마하여 간신히 넘어갔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 때문인지 그의 제자들 중 유독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사람이 많으며, 그 중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가 유명하다.

그 밖에도 임진왜란 때 구국으로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당, 얼자(孼子 : 천인인 첩의 자녀)출신인 스승 이달(李達)을 통해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 정신과 적서차별의 사회모순을 알게 되었던 허균(許筠) 등 사제지간의 이야기는 다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렇듯 스승은 제자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김근세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니 오월의 맑고 푸른 하늘과 상관없이 울컥한다. 눈 밑에 눈물이 차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 어른인가?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되묻는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