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최근 수 년 사이 한복을 입고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고궁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렇다보니 서울의 고궁 주변엔 한복 대여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런데 그 대여점들의 간판이나 디자인을 보면 싸구려 이미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색적인 권고안을 내놓았다. 인권위는 “남성은 남성 한복, 여성은 여성 한복을 입어야 고궁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문화재청의 가이드라인은 성차별이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사정은 이러하다. 현재 한복 착용자는 궁궐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남성은 남성 한복, 여성은 여성 한복을 입는 경우에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를 두고 성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등 90여 명은 2018년 1월 “성별에 맞지 않은 한복을 입은 사람에게 고궁 입장료를 받는 것은 성별 표현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문화재청은 가이드라인에 대해 “전통에 부합하는 올바른 한복 착용 방식을 알리고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성별에 맞는 한복을 입어야 한다. 고궁을 방문하는 사람이 생물학적 성별에 부합하지 않는 한복을 착용할 경우 한복 착용 방식을 모르는 외국인 등에게 혼동을 주고 한복의 올바른 형태를 왜곡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를 성차별이라 판단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고궁 입장 때 생물학적 성별과 맞지 않는 한복을 착용해 입장료를 면제받지 못하는 것은 성별 표현을 이유로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문화재청장에게 가이드라인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어떤 이유로도 성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뜻을 따르자니 난감한 일이 하나 생긴다. 한복 착용자의 궁궐 무료입장은 우리 전통한복 착용을 일상화함으로써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선양하고 전승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 전통한복에서 남녀의 옷차림새가 다르다는 점은 모두가 수긍하는 기본 전제다. 전통이나 문화재의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이 남성용 전통한복을 입고 여성이 여성용 전통한복을 입는 것은 성차별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복식문화일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남녀 구분 없이 한복을 혼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궁능 무료입장 제도의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성이 여성 한복을 입고 궁궐에 입장할 경우, 외국인이 이를 보면 우리의 한복 전통이나 문화를 오해하거나 왜곡해 받아들일 수 있다. 한복의 전통을 지키고 활용하겠다면서 그 전통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가이드라인이 성차별이라면, 그래서 여성 한복을 입은 남성에게도 무료 입장을 허용해야 한다면, 한복 착용자 무료입장 제도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국가인권위의 이번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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