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푸른 제복의 여름은 점령군처럼 봄을 장악해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봄을 점령한 여름은 거침없이 짙푸르게 물들여가고 있다. 수군수군 거리며 다투어 피었던 꽃들에게 이젠 봄날을 가슴에 묻으라한다. 초록을 물들이는 바람들이 꽃들에게 봄날의 썸싱들은 모조리 잊으라고 타이른다. 하얀 싸리 꽃 덤불이 신록 속에서 유순하게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봄날의 기억을 하얗게 지우라한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속삭인다.

명치끝에 돌덩이 하나가 매달려있다. 무거운 돌덩이는 온몸의 기를 다 빼앗고 식욕과 의욕마저도 잃게 했다. 내 몸의 자율신경계 능력은 고장이 나서 제멋대로 오작동을 한다. 예고되지 않은 폭풍우는 대책 없이 평온을 할퀴고 지나간다. 태풍은 반드시 비를 동반하고 오듯이 안 좋은 일들은 꼭 손을 잡고 같이 온다.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이 망치로 한 놈을 제압하고 나면 또 한 놈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정신없이 망치를 내리치면서 봄이 갔다 총 맞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스스로 봉합이 불가해진 상처는 통증이 심했고 명치끝에 돌덩이는 좀처럼 소화제로는 시원하게 내려가질 않았다.

4월은 전설처럼 나에게도 잔인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나의 큰 탓이 옵니다. 하고 기도를 하면서 낮아지고 낮아졌다. 모든 일의 근원은 나로부터였다. 좋은 일도 그른 일도 결국은 내가 뿌린 씨앗에서 싹이 났다. 그로부터 어떤 열매는 약이 되기도 했고 어떤 열매는 독이 되기도 했다. 좋은 열매는 내 것이고 독이 된 열매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오류가 났다. 문제는 아주 간단했는데 그걸 몰랐을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써온 나의 안경만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모든 것은 명쾌해지는 거였다. 나의 심안은 낡고 오래된 안경을 쓰고 살았다. 나의 눈에만 초점이 맞춰진 오래 된 고정관념의 눈이었다.

안경을 바꾸기로 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나의 안경에만 집착하고 애착을 가지고 살았던가.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오래된 것이 좋은 거라고만 생각하고 나의 색깔로만 온통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이미 노안이 되어 버린 나의 눈에 초점도 맞지 않는 나의 낡은 안경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수시로 착시현상을 일으켜서 시행착오를 저질렀다. 내 안경 탓을 안 하고 남의 탓으로 문제를 돌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도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겠다. 그래야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명치끝에 돌덩이로 인한 통증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노안은 멀리에 있는 것만 잘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이지가 않았었다.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미처 살펴보지 못해서 그 누군가는 상처받고 아파했을 거였다.

최신식 다 초점 렌즈로 나의 심안의 안경을 바꾸었다. 멀리도 가까이도 두루 주변이 잘 보이는 새로운 안경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안경에 적응을 하고 살려다보면 나는 뒤뚱거리며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어지러워서 때로는 현기증도 날 것이다. 그렇게 4월이 가고 넝쿨장미가 피는 5월이 되었다. 넝쿨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피기 때문이다. 먼저가려 다투지 않고 어깨동무하고 함께 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5월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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