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확장적 재정' 기조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내년 나라 살림 규모는 '슈퍼 예산'이라는 평가를 낳은 올해 470조원을 넘어서 사상 처음 500조원마저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이어져 온 세수호황이 올해 들어 끝날 조짐을 보이는 등 내년부터는 세수 여건이 녹록지 않아 정부의 총지출이 총수입을 넘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을 위한 건전성 확보 노력을 병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을 경우 결국 '실탄' 확보를 위해 적자 국채 발행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정부의 재정확대 강화 방침을 두고는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견과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견해가 엇갈린다.'


    ◇ 저소득층 지원·미래대비 선투자 필요…"재정 여력 충분"
    정부는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적극적·확장적으로 재정 운용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하면서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과 일자리 창출 등에 돈을 더 풀겠다고 밝혔다.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에 있어서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재정지출 확대가 미래를 대비하는 '선(先)투자'라는 점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모두발언에서 "혁신적 포용 국가를 위한 예산은 결코 소모성 지출이 아닌 경제·사회 구조개선을 위한 선투자"라며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세수를 늘려 오히려 단기 재정지출을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재정수지가 악화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재정에 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재원배분시 우선순위는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하위20%)의 소득개선, 일자리 창출, 미세먼지 저감 투자, 혁신성장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무역 다변화를 위한 신남방·신북방 지원, 남북간 판문점선언 이행에 두겠다고 했다.

    특히 자영업자와 고용시장 밖에 있는 저소득층의 소득개선을 통한 양극화 축소가 급선무다.

    소득 1분위 중 노인과 근로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 제외, 수급자·부양의무자 재산기준 완화 등과 같은 소득지원 대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 이들을 위해 사회서비스·노인·사회적 경제 일자리를 늘리고, 근로소득공제를 통한 탈빈곤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정책도 추진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6조7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국채 3조6천억원 발행)을 반영해도 39.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가채무비율 평균치가 약 110%인 것과 비교하면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편이다.

    최근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을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로 평가하고 급격한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권고한 점도 재정확대 기조에 힘을 싣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세수 여건과 국채 이자 부담이 적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재정지출 여력이 있다는 진단이 적지 않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채무도 낮은 편이고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총수요 진작 차원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지출을 꼭 총수입에 맞춰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경기가 나쁜 만큼 재정을 확장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최후의 보루' 재정 지켜야…30년 뒤엔 나랏빚만 2천800조 넘어설 수도
    재정이 경제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만큼 확장적 재정정책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선 세수호황이 막을 내릴 조짐이어서 확장적 재정을 뒷받침할 재원 확보가 막막한 상황이다.

    지난달 정부가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내면서 첨부한 '추경예산안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재정총량에 미치는 효과 및 관리방안'에 따르면 올해 추경을 반영한 총수입 규모는 476조4천억원으로, 총지출 규모인 476조3천억원과 거의 비슷하다.

    이마저도 내년부터 총수입은 504조1천억원, 총지출은 504조6천억원으로 뒤집힐 전망이다.

    2022년이 되면 총지출이 567조6천억원으로, 총수입(547조8천억원)을 약 20조원 초과하는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이처럼 '재정 실탄'이 부족해지는 가운데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려면 국채를 발행해 부족분을 메울 수밖에 없다.

    국가채무 규모는 현재로서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지만 문제는 미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2019∼2050년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연평균 4.6% 증가해 2050년에는 2천863조8천억원, GDP 대비 85.6%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올해 국가채무 규모를 718조1천억원(GDP 대비 38.4%)으로 가정해 추산한 것이다. 정부가 추경까지 고려해 내놓은 국가채무 규모가 731조8천억원, GDP 대비 39.5%임을 고려하면 2050년 국가채무 규모는 한층 커질 수 있다.'

    세계 각국과 비교해도 국가채무비율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한 지난해 3분기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문 순부채(시장가치 기준) 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0.1%포인트(p) 상승한 39.1%였다.

    기축통화국을 중심으로 채무비율의 절대수치가 100%를 웃도는 국가들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G20의 순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5.8%p 하락하는 등 주요국에선 국가채무비율이 낮아진 곳이 많았다.

    BIS의 조사 대상 29개국 가운데서는 상승한 곳은 그리스(12.7%p), 터키(4.5%p), 칠레(1.3%p), 호주(0.3%p)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공공부문 부채(D3)를 비교해보면 한국의 GDP 대비 공공부문 부채 비율은 42.5%(2017년 3분기)로, 6년 만에 8%p 상승했다. OECD가 조사한 24개국 가운데 스페인(25.4%p), 핀란드(15.7%p), 프랑스(13.7%p), 호주(13.1%p), 캐나다(11.2%p), 포르투갈(10.2%p), 노르웨이(9.6%p)에 이어 8번째로 큰 상승 폭이다.

    급속한 고령화도 고려할 부분이다.

    이미 고령사회(고령화율 14% 이상)에 접어들면서 복지지출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재정 관리가 한층 중요해져서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을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기 부양이지만, 이 역시 잘못된 처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장기 전망을 하며 경기 침체가 구조적 문제일 수 있고 확장적 재정정책 반복은 위험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권규호 KDI 연구위원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성장률 하락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겠지만 반복되면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