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설명 담은 표지석 설치

 

[옥천=충청일보 이능희기자] 중·일 전쟁의 서막을 연 지난 1937년 충북 옥천군의 창명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 아침 조회시간.
이 학교의 교장 요시다 이치로(吉田一太)와 학생 4004명은 조회에 앞서 아래의 문장을 크게 외치고 있었다.

"私共ハ、大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私共ハ、心ヲ合ワセテ天皇陛下ニ忠義ヲ盡シマス(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私共ハ、忍苦鍛錬シテ立派ナイ國民トナリマス(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일제가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외치며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시작한 1937년부터 패망한 1945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에게 충성을 강요 당하는 맹세문이 울려퍼졌다.
학교는 물론 관공서와 회사 등에서 조회를 하면서 우리나라 국민은 항상 이 '황국신민서사'를 낭송해야 했다.

일제는 황국신민서사를 낭송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국 곳곳에 이 맹세문이 적힌 '황국신민서사비'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옥천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인 죽향초등학교에서 발견됐다.
이 비석은 광복 후 통일탑으로 불리다 1993년에 비로소 일제 강점기의 잔재임이 알려졌다.
옥천군은 이 비석을 1994년 구읍에 있는 정지용 생가 앞에 눕혀 놓고 생가를 오가는 방문객이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돌다리로 만들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 돌다리에 대한 어떤 정보나 안내가 없었다.
군은 자세한 설명을 담은 표지석을 최근 세웠다.

지역 학생과 군민, 방문객이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느끼고 절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원형으로 만든 표지석에는 "이 다리는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옥천 죽향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황국신민서사비'다"라는 글귀와 함께 "광복 후 글자를 지우고 통일탑으로 사용하다, 1994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우리 학생들에게 충성 맹세를 강요한 내용이 새겨졌던 비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다"라고 적혀 있다.

군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지역에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군민이 이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이 내용을 알릴 수 있는 표지석 설치를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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