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말을 하지 않는 침묵도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어떤 경우엔 침묵이 많은 말보다 훨씬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회출입기자 시절, 야당 부대변인들의 막말에 가까운 독한 논평을 본적이 많았다.

어느 날, 당사자중 한명인 여자 부대변인을 만나 "말은 결국 본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니, 논평을 하더라도 그 격을 지키는 게 합당할 것"이라는 조언을 슬며시 했다. 그 뒤에 보니 발표하는 논평이 격식과 정제된 언어로 표현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외였던 그 부 대변인은 이후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원내에 입성했다. 이후에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반면, 그 당시 독한 논평과 독설을 지속했던 부대변인들은 원내입성이 결국 좌절됐고, 어떤 이는 정치권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상처를 후비고 흠집 내는 말과 글은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다. 충청권 부자(父子) 국회의원으로 유명한 정진석 의원(부친은 고 정석모 의원)은 "선친께서 생전에 무릇 정치인은 입속에 있는 이야기 중 7할만 말을 하고 나머지는 담아 놓으라고 하셨다"면서 말을 아끼는 것을 정치의 첫째 조건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과거 3김 시절 한 축이었던 고 김종필 전 총리는 첨예한 정치 대립 상황에서 침묵하길 즐겨했다. 물론, 그 침묵은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김 전 총리는 침묵이후 촌철살인의 말을 사용하고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정치공방은 인정하되, 정치비방은 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인정했다.

정치는 말과 글의 예술이다. 매일 반복되는 정치공방 중심에는 말과 글이 있다. 그래서 침묵이 가끔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침묵은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무조건 입을 다물고 있거나, 무조건 말을 아끼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시간을 갖고, 그 말, 글을 해도 옳은 것인지 적합한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지 등등을 염두에 두라는 이야기다.

생각을 정리하고 걸러서 말을 하고 글을 쓰라는 이야기다. 침묵은 때론 경청으로 이어진다. 사업을 하고 있는 지인 한분은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 많이 침묵한다. 그리고 듣는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많은 이야기가 더 오간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세상을 오래 살고 경험할수록 할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내가 왕년에 ~~' 어쩌구 하는 말이 길어진다. 길어진 말은 결국 대화 상대방을 지루하게 하거나 화나게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거든' 하는 상황을 만든다.

오히려 말을 내 안에서 되새김질 하다보면 더 좋은 말들로 정제되거나, '할 필요가 없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그 사람의 말은 그의 정신과 영혼을 담는다.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유는 '뒤에야' 라는 시에서 침묵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하략)"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