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청원署, 80대 속여 5천만원
들고 달아난 조직 '환치기꾼'
일주일간 고생 끝에 검거 송치

[충청일보 진재석기자]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빨리 찾아야 합니다. 잘못되면 압류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달 11일 한 통의 전화가 A씨(83)에게 걸려왔다.
전화를 건 이는 그럴듯한 거짓말로 대화를 이끌어나갔고 A씨 통장에 있는 돈이 다른 이의 대출금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모든 통장에 있는 돈이 압류될 수 있다며 적금 등을 모두 현금으로 찾아 놓으라고 A씨에게 권유했다. 
전화를 받은 A씨는 본인의 통장들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고 이어 여러 군데의 은행을 방문해 현금 5000만원과 5000만원 상당의 수표를 찾았다.

A씨에게 전화를 건 정체불명의 남성은 또다시 "찾은 현금을 서랍에 넣고 집 열쇠를 우편함에 넣어둬라"며 "청주 모 경찰서를 찾아가 통장이 자신(A씨)의 것이란 사실을 알리고 신고를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A씨는 이 남성의 지시대로 했고, 경찰서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달았다.
해당 사건을 맡은 충북 청주청원경찰서 강력 1팀은 A씨의 집 주변 모든 CCTV를 하나씩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이 빠질(?) 정도로 CCTV를 들여다보던 경찰은 용의자로 보이는 한 명의 남성을 특정했다.
즉시 남성의 동선을 추적, 그가 택시를 타고 경기도 안산역으로 이동한 사실을 알아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죄방식은 다소 뻔하다. 돈을 훔치거나 가지고 나오는 역할을 맡는 속칭 '수거꾼'이 돈을 세탁하고 환전하는 '환치기꾼'에게 전달할 일만 남은 것.
안산역은 이들의 거래장소이다. 역으로 이동한 형사들은 이들을 비롯해 국내 총선까지 일망타진할 생각에 또다시 CCTV를 분석했고 용의자로 특정한 남성을 찾았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역 근처 CCTV 위치를 파악,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은밀한 전달이 이뤄졌다.  
이에 '수거꾼'이 누구한테 돈을 전달했는지 알 수 없던 상황. 하지만 형사들은 직감적으로 '환치기꾼'을 즉시 찾아냈다. CCTV에서 빈손으로 길을 가던 한 사람의 손에 어느새 '흰 봉투'가 들려 있던 것.

그러나 수거꾼은 다음날 대만으로 출국해 붙잡을 길이 없었고, 경찰은 '환치기꾼' 검거에 집중했다. 
형사들은 '환치기꾼' B씨(48)의 신원과 주거지·차량 등을 파악, 검거작업에 나섰다.
이들은 B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형사들은 몇 날, 며칠을 좁은 차 안에서 끼니를 때우고 쪽잠을 자면서 잠복근무에 나섰다. 
B씨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일주일간 고생했고 공항으로 중국인 아내를 마중 나가려 한 B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특수절도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B씨를 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인터폴과 연계해 일당을 쫓고 있으며 대만으로 달아난 수거꾼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황이다. 
한명의 특별한 형사가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장현채 청주청원서 강력1팀장은 "저를 비롯해 이상욱·정왕훈·김한철 수사관 1팀 모두가 개인 생활도 포기하고 발로 뛴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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