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충청의창]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큐레이터(Curator)는 ‘돌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curare’에서 유래되었다. 자연을 가꾸거나 사람을 돌보듯이 유물과 예술작품을 돌보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래서 큐레이터는 전시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전시기획에서부터 교육,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그 역량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인문학적 전문성과 창조적 역량이 필요하다. 문화기획자이고 크리에이터다.

한국에서는 큐레이터를 학예사라고도 부른다. 박물관에서는 학예사, 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다. 마치 베네치아와 베니스가 같은 도시이지만 영어로 읽느냐, 자국어로 읽느냐에 따라 달리 불린다. 그런데도 왠지 학예사라고 부르면 유물 등의 낡고 오래된 것들은 연구하는 사람으로 생각되고, 큐레이터는 서구적이면서 탁월한 기획력이 발휘되는 업종으로 분류된다. 언어가 주는 한계이자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최근에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전국의 ‘로컬 콘텐츠 큐레이터’ 20명을 선발했다. 제 다 영어로 만든 신조어다. 로컬은 지역이고, 콘텐츠는 문화자원일 것이며, 큐레이터는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해 목적한 바를 일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조사연구하고 기획하며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가꾸고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실제로 로컬 콘텐츠 큐레이터에게 이 같은 미션이 주어졌다. 지방소멸의 위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벼랑 끝 마음으로 지역의 가치를 발굴하고 가꾸며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리운 것은 고향에 있다. 힐링과 워라밸과 소확행의 시대적 트렌드에 맞는 곳은 제 다 지역에 있다. 지역마다 간직하고 있는 삶과 멋과 자원, 크고 작은 정책사업 등에 스토리를 입히고 세상 사람들이 공유와 공감토록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펼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은 위기다.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나지 않는다. 농가소득도 여의치 않다. 농촌에서는 일 할 사람 찾기 힘들어졌다. 의료, 교육, 생활, 복지 등의 서비스망이 도시에 비해 크게 뒤쳐져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가 약하고 도시의 공간 또한 낡고 누추하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으며 청년들은 대도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지역분권과 지방자치에 힘을 모으고 있다. 생활밀착형 도시재생 사업을 하고, 농촌의 신활력 플러스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지역의 역사 문화 자연 등의 다양한 자원을 특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주민들의 자발성과 역량강화를 전제로 한다. 그래야만 일회성, 이벤트성 사업에 그치지 않고 삶에 스미고 물들 수 있기 때문이다.

로컬 콘텐츠 큐레이터 제도가 도입된 것도 지역의 가치와 중요성 때문이다. 공간의 가치를 찾아내고 역사문화, 자연환경, 사람풍경 등에 창의성을 더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지역의 인재부터 적극 발굴해야 한다. 그들이 지역과 이웃을 마음을 모아 보듬고 가꿀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에디터나 영상제작자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을 발굴하며 기획하고 현장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 성과를 지역의 주민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 100년 가는 지역, 100년 가는 콘텐츠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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