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백목련] 육정숙 수필가

거실 한 벽면에 붙은 화면 속에서 이목구비 뚜렷한 아나운서의 정확한 발음으로 들려오는 세상 소식에 어지럼증이 인다. 사라질 줄 모르고 끊임없이 버티고 있는 미세먼지, 시끄럽게 밀고 당기는 국내외 정세, 미래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청년들의 고용문제 등등, 계절 없는 날씨의 변덕 질, 알만한 정치인들의 어이없는 말, 말들의 거침없는 질주에 갑갑증이 인다.

지구가 도는 탓인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나의 뇌구조 탓인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의 방향을 잃어간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망설이다가 습관처럼 묵은 그릇을 꺼내 닦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에 무엇이든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산다는 일에 있어서 산화와 환원이 균형을 이루어 형평성을 알맞게 맞추어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어느 한쪽이 강하거나 약하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경우엔 시간만 놓치거나 잃게 된다. 그로인해 많은 문제들이 대두 되는 것이다.

수건에 치약을 발라 거뭇거뭇한 은수저를 닦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도 닦아 놓았건만 깔이 변했다. 은이라는 물질은 금속이다. 옛날부터 은은 금 다음가는 보화로 화폐로 사용하거나, 또는 여러 장신구나 그릇, 수저 등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은은 물과 산소에는 안정하지만 황, 오존, 염소 및 진한 황산, 질산 등과는 반응한다고 한다. 외부 환경의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쉽게 변색이 되므로, 그릇이나 수저로 사용 할 경우엔 손질과 보관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은은 순도가 낮으면 실생활에 그런대로 편하게 사용하기가 좋은데 은의 순도가 높을수록 변색이 빠르다. 은의 기품 있는 아름다운 광택은 백색도 아니요 회색도 아닌 그렇다고 회백색이라고 하기엔 더욱 부족한 표현일 것 같다. 정갈하면서 차지 않고 오히려 은은한 달빛을 품은, 신비스런 광채가 솟는다.

팔 근육을 드러내며 한참을 닦아내다 보면 은은하게 발하는 빛이 교교하다. 잘 닦아 공기와 접촉을 피해 밀봉하여 보관하면 오래도록 고귀한 그 모습을 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사용 할 때는 때마다 닦고 보관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떻든 시간이 걸리든 힘이 들든, 닦아내면 묻어 있는 흠이나 때를 지울 수 있다는 일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세상에서 얻은 분진과 흔적 들을 깨끗하게 지워 낼 수 있다면!

누가 되었든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세상으로 거침없이 쏟아놓는 말, 말들의 상처와 상흔들은 어찌 닦아 낼 것인지. 선의의 경쟁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을 드러내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요즘! 삶에 있어 물질에 힘이 들어가니 의, 식, 주가 윤택해지고 편리해진 반면, 더 누리고자 하는 慾(욕)의 녹들을 제 스스로들 쌓아 가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의 끝은 빈손임을. 세상 속, 綠(녹)의 근원들을 제거 하는 묘약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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