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백목련
머윗국 한 대접이향숙 수필가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5.31  16:35:0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육개장이 밥상에 올랐다. 숙주, 고사리, 대파, 무, 소고기를 넣어 시원하며 담백하다. 여기에 매운맛의 고추장으로 깔끔함을 더했다. 토란줄기 대신 들어 간 머위줄기 때문인지 쌉싸름한 냄새가 미각을 자극하여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한다. 지난 어버이날에 혼자 처가에 갔던 남편이 아랫집 정이에게 얻어 온 것이다.

머위는 집 근처의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어린잎을 데쳐 쌈을 싸 먹기도 하고 된장이나 고추장으로 간을 하여 조물거려 상에 올리기도 한다. 머위 터는 아낙들의 단골 채소가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뜯어내도 하룻밤사이 몰라보게 자라는 머위가 관능미를 자랑하면 가차 없이 잘라낸 줄기는 들깨가루를 넣어 볶아내거나 국을 끓인다. 들기름 두어 숟가락 넣어 고소한 향기가 쌉싸름함을 감싸 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집나갔었던 입맛이 돌아온다. 명절이나 제삿날 그리고 어른들의 생신날에나 맛볼 수 있었던 고깃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단백질. 섬유질 등의 영양성분이 풍부하여 허한 몸을 보호해 준다. 더욱이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어 어려운 시절에는 보양식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즈음에는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다.

계집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땐 비 오는 날의 우산이 되고 해가 뜨거운 날은 양산으로 아가씨 흉내를 낸다. 밀 방석을 깔아 놓은 것처럼 바닥에 가지런히 펼치고 넙데데한 돌에 반찬을 해 올리며 신랑각시 흉내도 내었었다. 그럴 때마다 신랑이 되기도 하고 각시 삼기도 했던 정이가 오랫동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낸 나에게 갖다 주라며 챙겨 주었단다. 언제고 고향집에 오게 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당부와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생 머윗대는 껍질을 벗기면 손톱 밑이 까매져서 끓는 물에 데쳐 낸 후 차가운 물에 담갔다가 껍질을 벗겼다. 며칠 동안 볶아먹고 끓여먹었건만 종갓집 맏며느리 못지않게 정이의 손이 큰 덕분인지 좀처럼 양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나름대로 맛깔스럽지만 도통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어머니가 하던 대로 흉내를 내도 마찬가지이다. 소꿉장난 끝에 어머니가 차려주던 머위국은 고소하고 달큰 쌉싸름했는데 그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동안 입맛이 변한 것도 있겠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 갈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 동기간 같은 정이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겠다고 서로의 국그릇에 숟가락을 넣던 정겨움 때문은 아닌가 싶다.

초록이 짙어지는 오월의 따스함을 맘껏 누리는 오후에 청천병력 같은 부고장이 날아든다. 정이가 생을 마감 했단다. 살뜰하게 챙겨준 머윗대를 아직 다 먹지 못하였는데 거짓말처럼 믿어지지 않는다.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젊음이 이렇게 쉬이 무너져도 되는 것인가. 머윗국을 함께 먹을 날이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함에 눈두덩이가 뜨겁다. 지병을 이겨내지 못한 정이에 대한 야속함이 그리고 좀 더 일찍 고향집 앞마당으로 달려간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 내내 목에 걸린다.

정이에게 인생은 깊은 맛의 머윗국 한 대접 이었을까.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