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파로호(破虜湖)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지자체와 일부 시민단체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이유는 중국이 싫어한다’, ‘적국 병사라고 해도 시신을 수장한 것은 비인간적이고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로호’라는 명칭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들여다 보면, 이러한 명칭 변경을 획책하는 세력들이 얼마나 편파적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파로호는 글자 그대로 ‘오랑캐(虜)를 깨뜨려(破) 승리를 거둔 호수(湖)’라는 뜻으로 여기서 오랑캐는 6.25 때 100만 대군을 침투시켜 한국의 통일을 좌절시킨 중공군을 말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중국 공산당 산하 인민해방군을 ‘중공군’, 또는 ‘중공 오랑캐’라고 불렀다.

기습 남침을 당한 한국군은 맥아더의 인천상륙 성공으로 반격에 나섰다. 미군이 주축이 된 연합군(유엔군)과 함께 파죽지세로 북진해 그해 10월에는 압록강 두만강까지 밀고 올라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통일을 거의 다 이룬 상황에서 야음을 틈타 압록강을 건너와 산악 곳곳에 매복한 중공군 수십만 병력 때문에 그 꿈은 깨졌다. 포위·고립 위기를 겨우 탈출한 한국군과 유엔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1.4후퇴다.

후퇴를 거듭해 경기·강원 중부까지 밀려 와 방어선을 구축한 국군은 양평 용문산 일대에서 중공군을 상대로 세계 전사에 길이 빛나는 기적같은 대승을 거둬 연합군이 반격으로 전환할 기회를 만들었다.
용문산 대첩으로 불리는 이 전투가 ‘화천전수지’, 또는 ‘대붕호(大鵬湖)’로 불리던 화천댐 인공호수를 ‘파로호’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한국군 6사단 3개 연대는 용문산전투에서 3개 사단 약 3만명으로 구성된 중공군 63 집단군을 불굴의 투지로 궤멸시켰다. 동북 방면으로 패주하던 중공군은 화천저수지를 만나 퇴로가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됐고, 60㎞를 추격해 온 6사단에 전멸당해 약 2만 명이 호수에 수장됐다. 용문산-화천 전투는 미 육군의 제병합동전투교본에도 실렸고, 6.25 전쟁 최대의 승전으로 꼽힌다.

파로호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비견되는 전적지이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켜낸 역사의 현장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위대한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파로호’라는 이름을 짓고, 친필 휘호를 써주어 전승기념탑을 세웠다.

국난을 극복해낸 용맹한 병사들의 강한 전투력과 애국심이 담긴 자랑스런 이름인 파로호는 후손돌에게 전해주어야 할 조국수호 역사 유산이다.

중국이 불쾌해 한다고 해서 개명을 획책하는 것은 대한민국 승전의 역사를 파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 당국자와 해당 지자체, 시민단체들은 각성해야 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에서 수만 구의 적군 시신을 묻어주고 명복을 빌어줄 여유가 어디 있는가. 비인도적인 악행은 중공군 병사들이 더 극심하게 자행했다는 것은 각국 외국병사들의 참전기에 다 나와 있다.

교전 상대방이었던 자들이 경제·군사대국이 됐다고 남의 나라 지명까지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한번 들어주다보면 전국에 남아나는 지명이 없게 될지 모른다. 국가의 존엄성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강대국과의 싸움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