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중심적 계획과 체계

역사적으로 도시의 출현은 자연의 재해나 야생동물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인간 중심적 시설과 공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벌써 매우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현대의 도시공간구성법칙과 요소는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정주환경의 중심에는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지역 상징성 부각을 위해 시설물과 공간이 위치하게 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기능별로 지형의 특성에 맞게 위계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보행중심적 계획과 체계라는 것이다.

물론 계획적인 개념은 아주 미약하였지만 자생적인 도시조직을 구성하는데 인간의 적정 보행단위를 기준으로 삼았고, 여러 가지 사례로 살펴 볼 수 있다. 우선 고대 로마시대의 도시들만 하더라도 대체적으로 부정형의 도시형태를 가지면서 자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치밀하게 공간시설배치를 하고, 특히 보행성을 고려한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기원전 200년경에 계획된 데밀라(djemila)라는 도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17에이커의 면적에 약 만명의 인구가 거주하였으며 많은 보행을 위한 계획적 요소를 찾을 수가 있다. 우선 도시에서의 접근성을 균등하게 하기 위해 도시의 상징시설과 공간을 지역중앙에 두고 몇 개의 방사형으로 연결을 시도하였다. 각각의 방사도로는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지고 배치되었으며 길이는 거의 비슷하여 일정한 보행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보행공간이 적절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흔히 일반인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갈 수 있는 거리가 250-300m정도이며 이 범위를 지나면 새로운 전환적 상황이 필요하거나 설계기법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것을 이 시대에는 이미 적용하였으며, 이는 적정거리에서 교차로를 형성하거나 굽은 도로의 형태로 시각적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혹은 아치(arch)나 동상을 둔 휴게공간으로 계획하였다.

마지막으로 몇 몇 대표적인 거리에는 이런 기본적인 보행성 확보에다 쾌적성까지 첨가하여 도로변에 열주나 아케이드 형식으로 구성하여 상징과 격식은 물론 광선차단효과까지 가져다 주는 방법으로 보행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런 사례외에도 수많은 역사적 도시들은 인간생활을 위해 보행적인 측면에서 도시공간구성을 시작하였고 이는 상당기간동안 도시계획의 기본원칙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기원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기능의 출현으로 인구흡인력을 가지고 되고, 이런 효과는 도시를 복합화된 유기체의 형태로 변모시키기 시작하였다. 많은 인구의 모임은 면적의 확장을 의미하고 이들간의 이동을 위해 그것도 신속하고 효율성을 위해 이동수단중심으로 도시공간이 바뀌었다. 특히 한동안의 도시계획의 가장 중요한 기준과 이론적 패러다임은 도시이동에 초점을 맞추어 끝없는 영역의 확장과 인간스케일의 무시로 귀착되어졌다.

이러한 결과는 유명한 도시이론가인 크로포드(j.j crawfod)에 의해 도시 자동차화의 문제점이 잘 요약되고 있다. 자동차중심의 문화는 거리생활을 죽게 하고, 커뮤니티의 사회성에 악영향을 미치며, 인간을 고립되게 하고, 도시 팽창을 부추키고, 교통사고의 유발로 많은 인명피해의 발생시키며, 다른 가로이용자에게 위험을 줌은 물론 사람들이 소음에 시달리게 하고, 공해를 유발하며 자연자원과 에너지를 급격히 고갈시키며 결국은 국가와 국토를 황폐화시킨다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가 주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에 초점을 맞추기는 하였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형의 문제점보다는 무형적 측면이 더 심각함을 얘기하고 있다.

다행이도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역사도시가 가지는 보행성이 강화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리의 경우 토지이용의 패턴, 상도덕, 그리고 보행자의 행위가 다른 나라와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지적인 계획으로 출발하여 도시계획적으로 개발되는 선진 외국의 경우와는 아직 많은 차이가 있고 아직 우리의 공간구성체계와 특성을 살리지 못해 실효성을 반감시키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하고 있지만 경제적 여건과 의식의 차이로 도시공간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새로운 도시공간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고 본연의 도시기능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계획체계에서부터 보행성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하위단계로 연결하면서 구체화시키고 특히 실행 단계에 있어서는 지역적 특성이 계획속에 묻어 나오게 하는 전문적 지혜가 필요하다.

▲ 황재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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