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어느 후배 시인의 첫 시집 원고를 읽고 그의 시집에 대하여 서평을 쓴 일이 있다. 나에게는 좀 바쁜 일들이 줄을 서고 있었지만 그의 시집에는 꼭 내가 평을 달고 싶기도 하던 차였다. 그의 나이도 이제는 40대 중반을 넘어선 터이니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와의 긴 인연 가운데서 이제야 그가 내는 첫 시집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단순히 시집을 평하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후배 시인의 시를 읽는 오월의 밤은 낮게 깔리는 소리를 먼저 내면서 비가 쏟아졌다. 어둠의 벼랑을 타고 비가 내리면서 세상은 무척이나 고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젖어드는 밤의 적막을 뚫고서도 그의 시에서는 올곧게 솟아나는 시심이 있어 나에게 다가왔다. 밤비에 세상이 젖는가 했더니 실은 내가 젖고 있었고, 빗소리가 나를 적시는가 했더니 정작 그의 시가 나를 더 깊숙이 적시고 있었다. 비에 젖고 시에 젖는 밤의 여유로운 마음은 나에게 또 다른 경험이기도 하였다.

후배 시인의 시를 읽는 나의 마음은 일편 홀가분하기도 하였다. 그와의 인연이 25여년에 가깝고 그와 문학 동인이라는 형식적 틀 안에 함께 해온 지도 벌써 15년이 훨씬 넘는 시점에서 그의 첫 시집 원고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그가 쌓아놓았던 원고를 정리하며 지난 시간을 과감하게 밀어내자고 속으로 뇌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의 세계로 함께 나아가자고 외쳤다. 그러한 마음들이 일면서 나는 그의 시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와 함께 해온 시간 속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그의 삶과 그의 시를 잘 이해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그의 첫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 나의 그러한 생각도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시편 속에는 그동안 그가 간직해 왔던 그의 삶과 그의 시정신들이 꿈틀대면서 나의 삶과 시에 대하여 가차 없는 반성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빛을 보게 되는 그의 첫 시집 출간을 진정으로 기뻐하면서, 나는 그의 시 가운데서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들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성실하게 그의 시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동안 그가 쌓아온 시간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가 삶으로 노력으로 펼쳐 보이려 했던 것들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었다.

후배 시인은 자식으로 치면 이제 늦둥이를 얻은 셈이다. 그만큼 그에게 늦둥이는 소중한 것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늦둥이를 이어서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자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가 시에 대한 늦바람이 좀 더 도져서 시에 대한 열정의 불길이 더 크게 번져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의 존재론적 성찰과 생에 대한 연민의식이 보다 깊은 언어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새로운 시간과 만나 더 큰 시적 성취를 이룰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보았다.

첫 시집 원고를 다 읽고 나니 나는 그가 추구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그의 삶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 더 깊이 나아가는 시적 행보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집을 다 읽고 나자 그가 찾고자 했던 길은 나의 가슴 안으로도 새 길을 트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시집을 냄으로써 내가 길을 찾게 된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깊고도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 김완하 한남대 문창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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